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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 돌리고 현수막 내건 교수들…환자들 “진료보다 여론전 우선”

중앙일보

입력

17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 공백 장기화로 대형병원의 진료 차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의대 교수가 병원 내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의대증원 정책이 잘못됐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교수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동정론과 함께 “생명이 달린 환자는 뒷전”이라는 불만도 터져나온다.

호소문·현수막·배지…의대 교수들 “안타깝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최근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환자분께 드리고 싶은 의사의 마음-2024년 봄’이라는 제목으로 된 호소문을 돌리고 있다. 연세대 의대 교수 비대위 측은 호소문에서 “의료 현장 인력 부족으로 긴 터널 같은 시간이 무겁게 흐르고 있는데 대학병원 교수 사직까지 발표되니 더욱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부족분을 개선하고,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정부·사회와 소통하려고 절실히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비대위 측은 ‘필수 의료과 해법이 2000명 낙수론?’이라는 홍보물도 배포하고 있다고 한다.

항의성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내건 교수들도 있다. 충북대 의대·병원 비대위 측은 최근 ‘의대 증원 불통’이라며 고창섭 충북대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인근에 내걸었다. 충남대병원 비대위는 “젊은 의사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필수의료사수 의료 새싹을 보호해주세요”라는 문구가 각각 적힌 배지를 지난 3월 제작해 배포 중이다. 일부 교수들은 의사 가운 위에 배지를 달고 근무 중이라고 한다. 한 의대 교수는 “의료사고를 막기 위해 교수들이 자기 체력을 쥐어짜네 간신히 버티는 중”이라고 말했다.

17일 서울 소재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17일 서울 소재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의료계에서는 “오는 25일 이후 상황이 더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의대 교수들은 지난달 25일을 기점으로 집단 사직서를 냈는데, 민법에 따르면 고용 기간 약정이 없는 근로자는 사직 의사를 밝힌 지 한 달이 지나면 사직 효력이 생긴다. 전국의대교수 비대위는 지난 12일 “병원을 지키고 있는 교수들의 정신적·육체적 한계와 4월 25일로 예정된 대규모 사직은 현재의 의료붕괴를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측은 전날(16일) 병원 전공의 등이 참여한 총회를 연 뒤 “입장 변화 없이 기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빅5’ 병원에서 일하는 한 교수는 “한계에 직면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진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직서 회수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진료 차질이 장기화하면서 환자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지원 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지난 16일 오후 6시 기준 모두 2365건으로 파악됐다. 전공의 집단사직이 시작된 지난 2월 19일 이후 하루 평균 40건 넘는 관련 문의가 이어진 셈이다. ▶수술 지연 ▶진료 차질 ▶진료 거절 등 실제 피해신고 접수로 연결된 사례는 671건이었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8주차를 맞은 지난 8~12일 서울 ‘빅5’ 병원의 일평균 일반입원 병상 수는 4475개로 파악됐다. 이는 사태 시작 전인 지난 2월 1~7일(7893개)보다 입원 병상이 43% 떨어진 수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환자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뇌동맥류 수술을 위해 지난 16일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은 50대 김모씨는 “수술을 빨리해야 하는데 병원이 수술을 중단했다는 교수 설명을 들은 뒤 급하게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5일부터 금요일 외래 진단을 중단한 충북대병원을 두고서 지역 맘 카페에서는 “환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암환자협의회 등 6개 중증질환 환자 단체가 모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지난 15일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국민은 지난 2달 가까이 의료계와 정부의 치킨 게임으로 이미 녹초가 돼 더는 울부짖을 기력도 하소연할 곳도 없는 무기력한 상태”라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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