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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내내 여소야대 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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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현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오현석 정치부 기자

오현석 정치부 기자

“3년은 너무 길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2월 이 구호를 처음 입에 올렸을 때만 해도 허무맹랑했다. 이때 조국혁신당은 여론조사에서 순위권 밖이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는 ‘비명횡사’ 공천으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통령 임기 단축이라니.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대통령 탄핵은 입에 올리는 순간 역풍이 확 분다”며 “그런 말은 조국혁신당이나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4·10 총선으로 ‘대통령 탄핵’은 금기어가 아니게 됐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1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음 대선이 몇 년 남았죠? (3년이) 확실합니까?”라고 말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13일 공식 브리핑에서 “사실상 탄핵에 가까운 불신임 평가”라고 총선 민심을 요약했다. 민주당이 ‘해병대 채수근 상병 특검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을 땐 취재진 사이에서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탄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냐”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선거 결과가 이렇게 무섭다.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팻말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팻말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돌이켜보면 여야의 팽팽하던 균형추는 3월 4일부터 무너졌다. 야권에선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컷오프(공천배제)를 수용하기로 한 날, 정부는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은폐 의혹에 분노하며 “제복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터라, 여권 지지층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2주 뒤(3월 18일)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대파 한 단을 들고 “그래도 875원이면 합리적”이란 발언을 했다. 하필이면 대통령 방문에 맞춰 산지 납품단가 지원(2000원)과 농협 자체 할인(1000원), 정부의 30% 할인 쿠폰(375원)까지 한꺼번에 적용됐다. 또다시 2주 뒤(4월 1일)엔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논란에 대해 51분 동안 일방 담화를 발표했다. 이처럼 총선 패배의 시작과 절정, 끝엔 모두 한 사람이 있었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는 2027년 임기 말까지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국회가 여소야대(與小野大)인 건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어느 때보다 정치적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는 극한 상황을 타개하는 것도 결국 대통령의 숙명이다. 이미 윤 대통령 스스로 용산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팻말(The Buck Stops Here)을 가리키며 “책임은 내가 진다”고 설명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