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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 흔들린 TSMC…삼성∙SK하이닉스 D램 가격 오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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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TSMC는 지진 발생 10시간 만에 공장 설비의 70% 이상을 복구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사진은 대만 TSMC 공장 외관. 로이터=연합뉴스

TSMC는 지진 발생 10시간 만에 공장 설비의 70% 이상을 복구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사진은 대만 TSMC 공장 외관. 로이터=연합뉴스

대만에서 일어난 7.2 강진으로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바짝 긴장 중이다. 지진 발생지는 대만 동부 화롄시이지만,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의 주요 생산 시설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사실이 속속 알려지면서다. 특히 TSMC의 최첨단 공정 시설의 피해가 크거나, 복구가 늦어질 경우 글로벌 반도체 가격 인상 및 기업 간 경쟁 구도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지진 다음날인 4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필요한 D램 가격 협상을 중단했다.

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TSMC는 성명을 내고 지진 발생 10시간 만에 공장 설비의 70% 이상을 복구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남부 타이난에 새로 짓고 있는 팹18 등 신설 공장은 이날 안에 시설 복구가 완료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 공장은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주력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TSMC는 “모든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들을 포함해 주요 장비에는 피해가 없다”며 일부 시설에서 장비 일부가 손상됐지만 완전한 복구를 위해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TSMC는 이날 저녁 다시 성명을 내고 “일부 생산라인은 생산 재개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지진 진폭이 컸던 지역의 일부 생산 라인은 생산 재개까지 비교적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피해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TSMC 2분기 매출 807억 감소 예상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하지만 중국·대만 언론에서는 TSMC가 입은 크고 작은 피해 상황을 전하는 보도가 속속 나오고 있다. 중국 반도체 전문지 신즈쉰은 TSMC 공장 건물의 내진 설계는 규모 7 지진까지 견뎌내는 레벨7로 설계됐으나 이번 지진으로 인해 일부 웨이퍼가 손상되고 기계들은 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지진으로 6시간가량 TSMC 직원들의 근무가 중단됐으며 이로 인해 2분기 실적이 6000만 달러(약 807억원)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대만의 한 연구기관을 인용해 보도했다. TSMC 분기 총 이익의 0.5% 규모다.

TSMC의 3나노(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등 최첨단 라인에서 피해도 보고됐다. 신즈쉰은 TSMC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타이난에 있는 3나노 웨이퍼 팹에서 기둥이 파손되는 등 구조적인 피해를 입어 생산이 완전히 중단됐다고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7나노 이하 공정용 EUV 노광장비도 파손됐다고 한다. 연구개발(R&D) 시설의 벽이 갈라졌으며 신주 지역에 있는 또 다른 공장에서도 파이프 파열 등 막대한 피해를 입어 생산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TSMC의 3나노 팹은 애플 아이폰15에 탑재되는 A17 칩 등 최첨단 고급 반도체를 만드는 곳이다. 삼성전자와 TSMC가 경쟁 중인 이 공정에는 수십일 이상 안정적인 진공 환경이 필수인데, 지진 같은 외부 충격을 받으면 칩 일부가 손상될 수 있다. 신즈쉰은 이번 지진으로 인해 애플 제품 공급망의 잠재적 지연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D램 메모리 산업 영향은

 3일 대만 화롄에 일어난 강진으로 건물이 기운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3일 대만 화롄에 일어난 강진으로 건물이 기운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메모리 반도체 3위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은 대부분의 D램을 대만에서 생산하고 있다. D램 공장이 집중된 대만 북부와 중부에서는 진도 4~5 수준의 흔들림이 있었다고 한다. 마이크론과 대만의 D램 제조사 난야는 지진 이후 순차적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오는 2분기 D램 가격 협상도 중단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손실을 파악한 후 가격 협상에 나서기 위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2분기 가격 협상을 중단했다고 트렌드포스는 밝혔다. 대만 지진으로 D램 공급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D램 가격은 공급사와 고객사 간 협상으로 책정되는데, 이 협상 가격의 평균치인 고정거래가격은 최근 석달째 등락 없이 1.8달러(D램익스체인지, PC향 범용제품 기준)에 머물러 있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론이 2분기 판매가격 협상 중에 계약논의 중단을 통지한 것은 공급 부족을 고려해 가격 협상력을 증대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씨티그룹은 2분기 D램 가격이 1분기 비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한국 반도체 업계 영향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TSMC를 비롯한 대만 소재 반도체 생산 시설의 피해 규모를 속단하기 어려운 만큼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로이터 통신은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스 분석을 인용해 “소재·부품 같은 전방산업뿐 아니라 최종 소비제품을 생산하는 후방 산업까지 한국 등 전자제품을 제조하는 국가들의 ‘단기적 위축’이 유발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D램 등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 전자 산업 전반에 가격 상승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문에는 반사 이익을 기대하는 전망이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TSMC 생산 차질은 삼성전자의 2분기 D램 및 파운드리 가격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라며 회사의 올해 2분기 반도체 부문 이익이 1분기 대비 3배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TSMC 대만 공장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전달하는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도 예의주시 중이다. 한국무역협회 따르면 2023년 한국은 대만에 30억달러 어치 메모리 반도체를 수출했다. 이중 상당수는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로부터 구매해 TSMC에 패키징(후공정 조립)을 맡긴 HBM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관계자는 “HBM 제조의 전 과정은 SK하이닉스 내부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TSMC에서 하는 패키징 과정은 우리의 HBM 납품이 끝난 후 최종 고객사와 TSMC 간 협의하는 과정일 뿐”이라며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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