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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의 망설임도 없었다…대참사 막은 ‘용기’ 배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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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한밤중 멀쩡한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일을 다른 곳도 아닌 미국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끊어진 다리 상판, 엿가락처럼 구부러진 철근 구조물, 그 아래 깔린 컨테이너 화물선. 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붕괴 사고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겠지만, 그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해야 할 교훈을 남겼다.

지난달 26일 0시39분 볼티모어 선적항을 출발한 화물선 ‘달리’호에서 비상 경보가 울린 것은 오전 1시 24분 59초. 갑자기 동력을 잃고 불빛이 꺼졌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화물선은 교각과 충돌하기 직전 메릴랜드주 교통국에 조난신호 ‘메이데이(Mayday)’를 긴급 타전했다.

지난달 26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발생한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붕괴 사고. [AP=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발생한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붕괴 사고. [AP=연합뉴스]

볼티모어 경찰과 소방 당국이 교신을 주고받으며 급히 도로 통제에 나선 시간은 1시25분45초. ‘메이데이’ 전파 후 채 1분이 안 됐을 때다. “한 명은 남쪽에서, 한 명은 북쪽에서 다리 교통을 전면 통제해주세요.”

붕괴 직후만 해도 여러 대의 차량이 다리에서 추락해 실종자가 20명을 넘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사고 후 공개된 보안 카메라 영상을 보면 1시27분 다리를 통과한 화물차가 마지막이다. 잠시 후 1시28분44초 화물선이 교각과 충돌했고 상판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앉았다.

다리 위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8명이 강물에 빠져 구조된 2명을 뺀 나머지 6명이 실종됐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있었지만 신속한 조난 신호, 그리고 곧바로 다리를 통제하고 차량 진입을 막은 당국자들이 대형 참사를 막았다.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가 “수많은 생명을 구한 영웅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했을 때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대형 재난 앞에서 ‘관할 타령’만 하다 골든타임을 놓쳐 무고한 희생자를 낳는 일을 해마다 봐 와서다.

2020년 7월 부산시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 사고에선 시민 3명이 숨지기까지 차량 통제는 없었다. 부산시와 동구청은 지하차도 관리 책임을 서로 미뤘다. 3년 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2023년 7월 집중호우로 불어난 물에 충북 청주시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 갇힌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도 차량 통제는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위기 신호가 전파되자 1분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행동한 볼티모어 당국자들의 신속한 대처와 용기를 우리 당국자들이 제대로 배워야 한다. 올해도 같은 참사를 겪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