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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28) 촉의 신하들은 슬프게 울건만 후주는 희희낙락하며 촉을 잊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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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촉의 부활을 노린 강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마지막까지 촉의 부활을 노린 강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종회가 강유에게 등애를 체포할 계책을 물었습니다. 강유는 우선 감군 위관을 시켜 등애를 체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만일 위관을 죽이려고 하면 모반하려는 것이 확실하니 즉시 토벌하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종회는 기뻐하며 위관에게 등애를 체포하도록 했습니다. 위관은 종회의 생각을 읽고 먼저 2-30통의 격문을 띄웠습니다.

‘조칙을 받들어 등애를 체포한다. 그밖에는 누구에게도 죄를 묻지 않겠다. 만일 빨리 귀순하면 즉시 벼슬을 올려 주거나 상을 주겠다. 감히 맞서는 자가 있다면 삼족을 멸하겠다.’

위관이 함거(檻車)를 가지고 새벽녘에 도착하자 등애의 부하 장수들은 모두 투항했습니다. 위관은 즉시 등애 부자를 체포하였습니다. 곧 이어 종회와 강유가 도착했습니다. 종회가 채찍으로 등애의 머리를 때리며 욕했습니다.

송아지나 치던 어린놈아! 어째서 감히 이따위 짓을 하느냐?

하찮은 놈! 험지를 무릅쓰고 요행을 잡고서도 이 꼴이 되었느냐?

강유도 한바탕 욕을 했습니다. 등애도 참지 않고 같이 욕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꽁꽁 묶인 몸이었습니다. 종회가 강유에게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평생에 바라던 것을 잡게 되었소.

옛날에 한신은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미앙궁에서 화를 당했고, 문종은 범여를 따라 오호(五湖)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칼을 물고 엎어져 죽었소. 이 두 사람이 세운 공명이 어찌 빛나지 않아서였겠소? 다만 세상 물정에 어두워 일찌감치 그 기미를 깨닫지 못한 탓이오. 지금 공은 이미 큰 공을 이루어 위엄이 주인을 떨게 하고 있으니 쪽배에 몸을 싣고 종적을 감추든가 아미산으로 올라가 적송자를 따라 노니는 것이 어떻겠소?

그대의 말이 틀렸소. 내 나이 아직 40도 안 되었거늘 바야흐로 진취적인 생각을 해야 할 때요. 어찌 그런 퇴영적인 일을 본받을 수 있겠소?

만약 물러나 한가롭게 지내지 않으려면 빨리 좋은 계책을 세워야 할 것이오. 그것은 명공의 지혜와 힘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니, 노부(老夫)의 말까지 들어보려 할 것은 없소.

강유는 내 마음을 알고 계시는구려.

강유는 종회가 본색을 드러내며 일을 꾸미려 하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은밀히 후주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라오니 폐하께서는 며칠만 더 치욕을 참으소서. 소인이 위태로운 사직을 다시 안정시키고 어두워진 해와 달을 다시 밝히어 기필코 한나라를 망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종회가 강유와 모반을 협의하고 있을 때 사마소가 장안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를 본 종회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의 군사는 등애보다 몇 배는 많다. 만일 나에게 등애만 잡으라는 것이라면 진공은 나 혼자 충분히 해낼 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직접 군사를 이끌고 왔다면 이것은 나를 의심하는 것이다.

임금이 신하를 의심하면 신하는 반드시 죽는 법이오. 등애의 경우가 어찌 그런 것이 아니겠소.

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소. 일이 이루어지면 천하를 얻을 것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서촉으로 물러날 터이니, 역시 유비만큼은 될 수 있지 않겠소.

며칠 전 곽태후가 죽었다고 들었소. 태후께서 ‘사마소를 토벌하여 임금을 시해한 죄를 다스리라’는 유조(遺詔)를 내렸다고 사칭하면 될 것이오. 명공 같은 재주라면 중원을 휩쓸어 평정하고도 남을 거요.

강유가 선봉이 되어야겠소. 성공하면 함께 부귀를 누립시다.

견마지로를 다하겠소만 여러 장수가 말을 잘 들을지 걱정이오.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오. 고궁에 등불을 크게 벌여 놓고 모든 장수를 청하여 연회를 벌이며 알아보겠소. 만일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모두 죽이겠소.

종회는 강유와 논의한 대로 장수들을 모아놓고 협박하여 모두 궁중에 가둬놓았습니다. 강유가 모두 죽이는 것이 낫다고 하자 그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종회의 심복장수인 구건이 이 말을 듣고는 감군 위관에게 알리자 위관이 군사를 이끌고 종회를 기습했습니다. 결국, 종회는 갑자기 들이닥친 군사들의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강유도 싸우려 했지만 가슴의 통증이 심하여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천명(天命)을 한탄하며 스스로 자결했습니다. 강유의 계책마저 실패로 끝나자 모종강은 이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습니다.

‘강유는 먼저 위나라 장수를 모두 죽인 다음 종회를 죽이고 다시 한나라 황제를 세우려 했다. 그 계책이 깊지 않다고 말할 수 없고, 그 마음이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우선 등애를 제거하고자 종회의 손을 빌리면서, 위관을 제거하고자 또 등애의 손을 빌리려 했다. 모든 장수를 모살하려고 한 것이 강유이고, 등애를 모살하려 한 것도 강유이며, 종회를 모살하려 한 것도 강유이고, 위관을 모살하려 한 것 역시 강유다. 그러나 종회는 죽였지만 장수들은 죽지 않았고, 등애는 죽었지만 위관은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천명이지 사람이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종회와 강유가 죽자 등애의 병사들이 밤을 도와 등애를 뒤쫓아 갔습니다. 이 사실을 안 위관은 등애가 풀려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등애와 원수인 호군 전속이 나섰습니다. 성도로 돌아오던 중인 등애는 무방비상태에서 전속의 칼에 죽었습니다. 아들 등충도 저항하다가 죽었습니다. 열흘이 지난 뒤 가충이 성도에 도착하여 방을 붙이고 민심을 안정시켰습니다. 후주는 낙양으로 옮기도록 하였는데 따르는 신하는 상서령 번건, 시중 장소, 광록대부 초주, 비서랑 각정 정도였습니다. 후주가 낙양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사마소가 꾸짖었습니다.

공은 주색에 빠져 도리를 저버렸으며 훌륭한 이를 내쫓고 실정을 일삼았으니 죽어 마땅하다.

촉주가 나라의 기강을 잃기는 하였지만 다행히 일찌감치 항복했으니 용서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위나라 진남장군 두예. 출처=예슝(葉雄) 화백

위나라 진남장군 두예.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소는 유선을 안락공(安樂公)으로 봉하고 살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동행한 신하들도 모두 열후에 봉했습니다. 후주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가 반면에 화기가 돌았습니다. 환관 황호는 저잣거리로 끌고 나가 능지처참을 했습니다. 후주는 다음 날 사마소를 찾아가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사마소가 연회를 베풀고 정중히 대접했습니다. 먼저 위나라 음악과 춤을 공연토록 했습니다. 촉의 관리들은 비애에 잠겼으나 후주는 기뻐하기만 했습니다. 사마소가 서촉 음악을 연주토록 했습니다. 촉의 관리들은 눈물을 떨궜으나 후주는 여전히 시시덕거리며 웃기만 했습니다. 술이 거나해지자 사마소가 가충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무정하기가 저 지경에 이르렀으니 제갈공명이 살아 있다고 해도 오래도록 온전히 보좌할 수 없었을 터, 하물며 강유이겠느냐!

안락공! 서촉 생각이 몹시 나지 않소?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즐거워 서촉 생각은 나지 않습니다.

각정이 후주의 말을 듣고 있다가 후주가 화장실을 가자 따라와서 말했습니다.

폐하! 어째서 서촉 생각이 안 난다고 대답하셨습니까? 만약 다시 물으면 ‘선인의 산소가 모두 촉 땅에 있기 때문에 서쪽을 바라보면 슬픈 생각이 나서 하루도 생각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라고 울면서 대답하소서. 진공은 반드시 폐하를 촉으로 돌려보내 줄 것입니다.

촉 생각도 잊고 가무를 즐기는 후주. 출처=예슝(葉雄) 화백

촉 생각도 잊고 가무를 즐기는 후주. 출처=예슝(葉雄) 화백

후주는 단단히 기억하고 술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후 사마소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후주는 각정이 일러준 대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울려고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아서 눈만 꼭 감았습니다. 이를 본 사마소가 말했습니다.

어째 각정이 시킨 말 같소이다.

앗! 실을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사마소와 좌우의 대신들이 모두 껄껄 웃었습니다. 이런 자가 촉의 황제였으니 망하는 것이 오히려 천리(天理)에 합당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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