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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27) 후주는 항복하는데 강유는 다시 부활을 노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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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군에게 항복하는 후주와 신하들. 출처=예슝(葉雄) 화백

등애군에게 항복하는 후주와 신하들. 출처=예슝(葉雄) 화백

후주는 등애가 면죽을 함락시킨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위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신하들은 성도를 버리고 남쪽으로 달아날 것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광록대부 초주가 반대했습니다.

안 되옵니다. 남만은 오랫동안 우리를 반대해온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도 평소 그들에게 베푼 은혜가 없습니다. 이제 만약 그곳으로 간다면 틀림없이 큰 화를 당할 것입니다.

오는 우리와 동맹을 한 사이입니다. 이제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동오로 가소서.

예부터 남의 나라에 얹혀살면서 천자 노릇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신이 짐작건대 위는 오를 병탄할 수 있지만 오는 위를 병탄할 수 없습니다. 오에 귀순할 것이 아니라 위에 항복하는 것이 낫습니다. 폐하!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후주는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신하들은 의견만 분분할 뿐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초주는 일이 급하게 된 것을 알고 다시 상소했습니다. 후주가 초주의 상소를 받아들여 항복하려고 할 때 다섯째 아들인 북지왕 유심이 소리쳤습니다.

구차하게 살아남으려는 이 썩어빠진 선비 놈아! 어찌 사직에 관한 중대한 일을 놓고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느냐? 자고로 항복하는 천자가 어디 있더냐?

지금 대신들이 모두 항복해야 한다고 건의하는데 너는 혼자서 혈기와 용기만 믿고 온 성을 피로 물들이겠다는 것이냐?

지난날 선제께서 살아계실 때 초주가 언제 국정에 간여했습니까? 이제 주제넘게 국가 대사를 논하면서 입을 열자마자 허튼소리를 늘어놓으니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성도에는 아직 수만 명의 군사가 있고, 강유의 전군이 모두 검각에 있습니다. 그가 반드시 구원하러 올 터이니 안팎에서 공략하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어찌 썩어빠진 선비의 말을 듣고 가벼이 선제의 기업을 버리려고 하십니까?

너같이 어린 것이 어찌 천시(天時)를 알겠느냐?

후주는 유심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초주에게 항서(降書)를 지으라고 하고 사서시중 장소, 부마도위 등량과 함께 옥새를 가지고 낙성에 있는 등애에게 가서 항복을 청하도록 했습니다. 등애는 대단히 기뻐하며 옥새를 받아들이고 그들을 융숭하게 대접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북지왕 유심은 노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습니다. 아내 최씨가 물었습니다.

위군이 가까이 오고 있소. 부왕께서는 이미 항서를 보내고 내일 신하와 함께 항복한다 하오. 사직은 이제 망하게 되었소. 나는 남에게 무릎을 꿇기 전에 먼저 죽어 지하에서 떳떳이 선제를 뵙고 싶소.

참으로 장하십니다. 돌아가실 자리를 찾으셨나이다. 제발 첩이 먼저 죽은 다음 왕께서 돌아가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부인이 기둥에 머리를 박고 죽었습니다. 유심은 즉시 세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한바탕 피눈물을 흘린 후 자결하였습니다. 다음날, 후주는 등애에게 항복했습니다. 등애는 후주를 표기장군으로 삼고 백성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강유에게 귀순하도록 달랬습니다. 낙양으로 첩보도 띄었습니다. 강유는 후주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칼을 뽑아 바윗돌을 내리치며 분통해 했습니다. 군사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습니다. 강유는 군사들을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병사들이여! 걱정 마시오. 나에게 한나라를 회복시킬 한 가지 계책이 있소.

강유는 검각에 백기를 꽂고 종회의 영채로 사람을 보내 항복하기로 하였습니다. 종회는 매우 기뻐하며 강유를 맞았습니다. 강유가 종회를 치켜세우며 눈물을 떨구자 종회는 화살을 꺾으며 맹세하고 강유와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강유는 속으로 기뻤습니다.

한편, 등애는 서촉에서 연회를 열며 사마소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유선을 부풍왕(扶風王)에 봉하여 은총을 내리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마소는 등애가 제멋대로 하려는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후한 상을 내리는 한편 감군 위관이 편지를 전달하도록 하였습니다. 위관이 등애에게 전달한 편지의 내용에는 진언할 것이 있으면 꼭 조정에 아뢰어 허락을 기다리도록 하고 멋대로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등애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장수가 전장에 나와 있을 때는 임금의 명령도 안 받을 수 있다. 나는 이미 조칙을 받들고 정벌에 전념하고 있는데 어째서 못하게 막느냐?

등애는 즉시 답장을 써서 위관에게 주었습니다. 사마소가 답장을 보고는 등애가 공적만을 믿고 교만해져서 멋대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가충이 종회를 불러서 등애를 제압하는 의견을 냈습니다. 사마소는 즉시 가충의 의견을 따라 종회에게 봉작을 내리고 등애를 제약도록 했습니다. 종회가 강유를 청해 계책을 협의했습니다. 강유는 때가 왔음을 알고 등애를 비하하고 종회를 추켜세웠습니다. 종회가 강유의 말을 좋게 여기자 강유는 좌우를 물리치고 지도를 주면서 은밀하게 말했습니다.

등애에게 모반죄를 씌운 종회. 출처=예슝(葉雄) 화백

등애에게 모반죄를 씌운 종회. 출처=예슝(葉雄) 화백

옛날 무후께서는 초려에서 나오실 때 이 지도를 선제께 드리면서 ‘익주는 기름진 들판이 1천여 리에 백성도 여유 있고 나라도 부유해서 패업을 이룰 만하다’고 말씀하셨소. 선제는 이리하여 결국 성도에서 창업하셨소. 지금 등애가 그곳으로 갔으니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겠소?

어떤 방법으로 등애를 제거해야겠소?

진공(晋公)이 의심하며 꺼리고 있을 때 서둘러 등애가 모반을 하려 한다는 표를 올리시오. 진공은 틀림없이 장군에게 토벌하라고 할 터이니 일거에 사로잡을 수 있으리다.

종회는 강유의 말을 따라 즉시 낙양으로 등애가 모반을 꾀한다는 표를 올렸습니다. 또한, 중도에 등애의 표를 가로채 글씨체를 모방하여 오만한 말로 내용을 고쳐서 보냈습니다. 이를 본 사마소는 종회에게 등애를 잡으라고 이르고 가충에게 별도로 3만 명의 군사를 주어 야곡으로 보냈습니다. 자신도 조환과 함께 친정에 나섰습니다. 서조연 소제가 간했습니다.

종회의 군사가 등애의 군사보다 여섯 배는 많습니다. 종회에게 등애를 잡아들이라고 하시면 족합니다. 무엇 때문에 명공께서 직접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자네가 지난 날 한 말을 잊었는가? 종회가 뒤에는 반드시 모반할 것이라고 자네가 말했었네. 내가 이번에 가려는 것은 등애 때문이 아니라 실은 종회 때문일세.

저는 명공께서 잊으셨을까 봐 일부러 여쭤본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하실 요량이면 부디 비밀로 하소서. 누설되면 안 됩니다.

사마소는 소제의 말을 옳게 여겼습니다. 대군을 거느리고 출발할 때 가충도 종회가 변을 일으키지 않을까 의심되어 사마소에게 은밀히 고했습니다. 그러자 사마소가 시침을 떼며 말했습니다.

만일 자네를 보냈다면 나는 자네도 의심해야겠는가? 우선 장안(長安)으로 가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일세.

억울하게 죽은 등애. 출처=예슝(葉雄) 화백

억울하게 죽은 등애. 출처=예슝(葉雄) 화백

모종강은 사마소가 심복 가충에게도 속내를 밝히지 않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사마소는 종회가 모반하리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등애가 모반할 줄은 몰랐다. 짐작하지 못한 사람까지 뜻밖에 변을 일으키는데 어떻게 짐작하고 있는 사람을 은밀히 대비하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종회를 시켜 등애를 제약하라 이르고 즉시 자신이 종회를 방어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종회가 이것을 눈치챌까 봐 철저히 숨기고 비밀로 하며 가충 같은 심복에게까지 속마음을 비치지 않았다. 사마소의 간웅(奸雄)됨이 실로 조조에 뒤지지 않는다. 종회는 촉을 치려고 하면서 오를 치려는 것처럼 하더니, 사마소 역시 종회를 잡으려 하면서 등애를 잡으려는 것처럼 한다. 그 사람을 다스리는데 그가 한 방법대로 하고 있으니, 자기가 한 대로 자신이 받게 된다는 말이 종회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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