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와 여행을 통해 시대와 삶을 반추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동양의 고전소설 『삼국지』에 빠져 7여 년에 걸쳐 중국 전역의 삼국지 현장을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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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25) 조조 독살에 실패한 길태, 의대조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다2023.04.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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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49) 간교함의 대명사 조조가 주유의 속임수에 빠지다2023.07.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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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6) 화웅의 목을 벤 관우, 호뢰관서 삼형제에게 혼쭐난 여포2023.02.01 06:00
총 9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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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92) 촉오가 다시 화친하고 조비는 장강에서 혼쭐이 나다
조비가 사마의의 계략을 받아들여 오로(五路)로 공략하기로 하고 손권에게도 사람을 보냈습니다. 육손은 우선 승낙하고 사로(四路)의 전투 상황을 보다가 제갈량이 불리하면 즉각 군사를 진격시켜 성도를 함락하고, 사로의 군사가 패한다면 다시 상의하도록 했습니다. 장온이 다시 등지와 귀국하여 손권에게 후주와 제갈량의 덕망을 설명하고 영원한 우호로 맺어지기를 바란다고 보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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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91) 유비는 백제성에서 눈 감고, 제갈량이 후주와 촉을 이끌다
조비는 가후에게 촉과 오 중에서 어디를 먼저 공격해야 하겠냐고 물었습니다. 동오는 여범에게 군사를 이끌고 조휴를 막게 하고, 제갈근에게 군사를 이끌고 남군에서 조진을 막게 하고, 주환에게 군사를 이끌고 유수에서 조인을 막도록 했습니다. 제갈량은 손권에게 보낼 사자로 등지를 생각해두고 그에게 한나라를 중흥시키려면 어느 나라를 먼저 공격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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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90) 칠백리 영채를 불태운 육손, 살기 위해 백제성으로 도망간 유비
‘적의 사기를 꺾어 놓는 전략을 쓰는 사람은 앞으로 있을 대접전을 위해 먼저 소규모 접전을 벌여 적의 사기를 꺾어 놓는다. 장차 있을 대접전에서 이기기 위해 먼저 소규모 전쟁을 벌여 이김으로써 적의 사기를 꺾어 놓는 것이다. 적을 교만하게 만드는 전략을 쓰는 사람은 앞으로 있을 대접전을 위해 먼저 겁을 먹고 나가지 않는 것처럼 하여 적의 마음에 교만을 심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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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9) 유비는 말실수로 황충마저 잃고 손권은 서생 육손을 등용하다
관흥과 장포가 황충을 만나 유비의 말을 전했습니다. 한편, 손권에게 투항했던 부사인과 미방은 군사들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자, 관우를 사로잡았던 마충의 수급을 가지고 유비에게 바치며 죄를 용서해 줄 것을 청했습니다. 유비가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이제 남은 것은 범강과 장달뿐이니 두 사람을 잡아 장비의 수급과 함께 보내고, 아울러 형주도 돌려주고 손부인도 돌려보낼 터이니 전처럼 화친하여 함께 위나라를 치자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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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8) 손권을 철천지원수로 삼은 유비, 손권은 제갈근을 천하의 신교(神交)로 믿다
오에 유익한 것도 없이 공연히 무릎을 꿇는 치욕이나 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가? 조조의 구석은 조조 자신이 덧붙인 것이고, 손권의 구석은 손권 자신이 덧붙인 것이 아니라 위가 덧붙여 준 것이다. 그리고 조조의 구석은 천자가 감히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고, 손권의 구석은 위가 주려는 것을 손권이 감히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감히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주는 것을 감히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에는 또한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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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7) 동오 공격을 막아선 조운, 술버릇 못 고쳐 먼저 죽은 장비
‘장비가 위를 먼저 치지 않고 오를 먼저 치자고 청한 것은 그가 형제의 의리만 있고 군신의 의리를 몰라서가 아니다. 가령 은(殷)이 걸(桀)을 칠 때 먼저 위(韋)를 치고, 고(顧)를 치고 곤오(昆吾)를 쳤다든지, 주(周)가 주(紂)를 칠 때 먼저 숭(崇)을 치고 밀(密)을 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를 위해서도 오를 먼저 쳐야 할 뿐만 아니라 군신을 위해서도 오를 먼저 쳐야 했기 때문이다.’ 유비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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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6) 조비는 황제에 오르고 유비는 동오 총공격을 명하다
서기 220년 4월, 한중왕 유비는 황제에 올랐습니다. ‘유비는 성도에서 황제 노릇을 했고, 조비는 낙양에서 황제 노릇을 했으니 똑같은 황제다. 유비가 서천을 뺏은 것에 대해 논하자면 유씨가 유씨의 것을 뺏었으니 어떤 사람은 역리로 빼앗아 순리로 지켰다고 여기고 있고, 유비가 제위에 오른 것에 대해 논하자면 유씨가 유씨를 계승했으니 곧 순리를 취해 순리로 지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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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5) 위왕에 오른 조비, 조식은 칠보시(七步詩)로 목숨을 구하다
조비는 상고 소식을 듣자 방성통곡을 했습니다. 30년을 사귀어온 오랜 교분으로 말하자면 三十年來說舊交 어려움 당해 조조에 불충한 게 안타깝지만 可憐臨難不忠曹 사람을 안다고 속내까지 아는 건 아니니 知人未向心中識 이제부터 범을 그릴 땐 뼈까지 그리시오 畵虎從今骨裏描 언릉후 조창은 이미 군사와 말들을 넘겨주고 갔건만, 임치후 조식과 소회후 조웅은 상고 소식을 듣고도 달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맹달은 그를 돕는 사람들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위왕 조비에게 투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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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4)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는 유비, 조조는 화타마저 믿지 않고 천명을 다하다
손권은 관우의 목을 베었으나 유비를 두려워하여 관우의 수급을 조조에게 바쳤습니다. 유비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사실여부를 물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한탄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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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3) 관우를 목 베어 죽인 손권, 여몽을 피토하며 죽게 한 관우의 혼
관우는 왕보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서도 다시 왕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신의 무력(武力)만 믿고 있으니 진정 깊게 반성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 동오의 여몽은 맥성의 관우가 성 북쪽으로 빠져나가 소로를 통해 서천으로 갈 것을 알고 미리 군사를 매복시켜 놓았으니 더더욱 왕보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한편, 맥성에 있던 왕보는 관우가 피투성이가 된 채 나타난 꿈을 꾸고는 관우 부자가 죽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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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2) 맥성에서 구원을 기다린 관우, 지원병을 보내지 않은 유봉과 맹달
유봉은 맹달의 말을 듣고 지원병을 보내지 않기로 입을 맞췄습니다. 모종강은 유봉과 맹달이 구원병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유봉이 구원병을 보내지 않은 것은 맹달이 시켜서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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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1) 화타의 의술에 감동한 관우, 관우의 용기에 감동한 화타
관우는 화타의 의술에 감동하고, 화타는 관우의 용기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참으로 빌려준 것으로 생각하고 참으로 돌려주기를 바랐으며 나누어 준 것마저 부족하여 또다시 기습을 감행하여 유비의 뜻을 펼치지 못하게 하고 관우의 공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니 어찌 침통하고 한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주유가 살아 있을 때는 손권과 유비의 사이가 벌어졌고, 주유가 죽자 손권과 유비는 화합했다. 그리고 노숙이 등용되자 손권과 유비는 화합했고, 노숙이 죽자 손권과 유비의 사이는 다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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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0) 우금은 목숨을 구걸하고 방덕은 죽음으로 말한 것을 지키다
한중왕 유비의 명령을 받들어 부사인과 미방을 선봉으로 삼아 진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부사인과 미방이 술을 마시던 막사에서 불이 나서 화포로 옮아 붙었는데, 급기야는 영채 안에 있는 군량과 무기 등을 태워버렸습니다. 마침내 조인은 하후존의 말을 따라 만총에게 번성을 지키게 하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관우와 싸우러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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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9) 개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관우, 오호장(五虎將)된 황충에 분노하다
제갈량은 군사가 되었고, 관우·장비·조운·마초·황충은 오호대장에, 위연은 한중태수에 임명되었습니다. 조조는 유비가 한중왕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돗자리나 짜던 하찮은 놈이 감히 왕이 되었다고 크게 화를 냈습니다. 관우는 평생에 천하의 선비들을 깔보는 터라 수하에 맞이하라는 영도 내리지 않았다.’ 춘추를 즐겨 읽고 문무의 지혜를 갖추었다는 관우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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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8)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그 또한 아깝도다
어째서인가? 공융은 조조를 섬기지도 않았고 정직하게 조조를 거스른 사람이고, 순욱은 정직하지 못하게 조조를 섬기다가 뒤에 와서 정직하게 조조를 거스른 사람이며, 양수는 정직하지 못하게 조조를 섬기다가 또한 정직하지 못하게 조조를 거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일 정직하게 조조를 거슬렀다면 죄가 조조에게 있겠지만, 정직하지 못하게 조조를 거슬렀다면 그 죄는 양수에게 있는 것이다. 모사의 재주로 조조에게 등용된 사람은 곽가·정욱·순욱·순유·가후·유염이 그들이고, 문사의 재주로 조조에게 등용된 사람은 양수·진림·왕찬·완우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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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7) 득롱망촉(得隴望蜀), 후회하는 조조와 기뻐하는 유비
조조가 채염의 집 벽에서 비문을 보다가 부친이 썼다는 여덟 글자를 보았습니다. 내가 이제 대군을 남정에 둔치고 경의 뛰어난 재주를 보고 싶으니 ‘욕되게 하지 말라(勿辱)’는 두 글자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후연의 조조의 편지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장합과 출전을 논의했습니다. 그래서 영채를 버리지도 않고, 영채 문을 닫지도 않고, 깃발을 숨긴 채 북소리도 내지 않고, 밖에 말을 멈추고 서서 의병(疑兵)으로 조조를 물리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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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6) 술취한 척 장합을 무찌른 장비, 천탕산을 차지한 노장 황충
장비는 장합의 작전을 역이용하여 위연으로 하여금 매복군을 꼼짝 못 하게 하고 장합을 무찔렀습니다. 유비가 놀라 제갈량에게 묻자 제갈량은 황충의 생각을 간파하고 유비에게 적들이 교만한 생각을 갖게 하는 노장의 계책이라고 했습니다. 법정은 황충과 엄안이 천탕산을 차지하자 유비에게 한중을 차지할 기회가 왔음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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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5) 관로의 신묘한 점복에 감탄을 금치 못한 조조
‘김의가 만약 유비와 먼저 약속을 하고 조조가 한중을 구하러 나간 뒤에 거사를 했다면, 유비는 밖에서 쳐들어오고 김의는 안에서 기병하여 거사는 분명히 성공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애석하다. 경기와 위황 등 다섯 사람 집안의 하인들을 보면 동승이 이 다섯 사람만 못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섯 사람 집안의 훌륭한 하인들을 보면 다섯 사람의 훌륭함을 더욱 믿게 된다.’ 조조는 경기와 위황이 허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나와서 불을 끈 사람과 끄지 않은 사람을 나눠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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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4) 좌자가 도술을 부려 위왕 조조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다
대개 아내의 베갯머리 송사에 마음을 뺏긴 사람은 그 마음을 돌릴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돌릴 수 있다. 좌자의 도술 한 방이 백만 대군보다 더 강하니 조조인들 어찌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형벌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고, 능욕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고, 도륙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고, 삼족을 멸하려고 해도 도대체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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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3) 조조가 한중을 차지하자 손권에게 형주 3군을 돌려준 유비
양평관은 조조가 차지하였고 두 장수는 전사했습니다, 장로는 방덕에게 1만 명의 군사를 주며 조조군을 막도록 했습니다. 방덕은 마초의 가장(家將)으로 마등을 죽인 조조를 기꺼이 섬겼으니 이것은 또 무슨 심산인가? 그래서 식자들은 방덕을 양부만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자 주부(主簿) 사마의가 여세를 몰아 유비를 공격하여 익주를 차지할 것을 아뢰었습니다. 유비는 조조가 한중을 차지하자 곧바로 쳐들어올 것이라 믿고 하루에도 몇 번씩 놀라며 무서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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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2) 칼 한 자루로 위기를 벗어난 관우, 복황후를 때려죽인 조조
아우인 제갈량은 지방출장 중이어서 유비를 만나서 관우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일을 고했습니다. 관우는 측근 10여명에 칼 한 자루만 들고 노숙을 만났습니다. 헌제는 한고조의 후신이고, 복황후는 여황후의 후신이고, 조조는 한신의 후신이고, 조조의 딸은 척희의 후신이고, 화흠은 조왕 여의의 후신이기 때문에 전생에 자신들이 당했던 일에 앙갚음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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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1) 유비가 드디어 익주를 차지하다
장로는 크게 기뻐하며 마초에게 2만 명의 군사를 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양송이 퍼뜨린 소문은 마초가 한중으로 오지 못하도록 길목마다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초는 유비가 유장과 싸울 필요 없이 직접 유장을 불러내어 항복시키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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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0) 죽음으로 주인을 지킨 장임, 사욕으로 주인을 판 법정
제갈량은 낙성의 금안교(金雁橋) 부근에 갈대밭이 있는 것을 보고는 군사를 매복시킨 후, 자신이 장임을 유인하여 사로잡았습니다. 열사가 어찌 두 주인을 섬기는가 烈士豈甘從二主 장임의 충용은 죽어서 오히려 빛나노라 張君忠勇死猶生 고명함은 하늘가의 달과 같아서 高明正似天邊月 밤마다 빛을 뿌려 낙성을 비추노라 夜夜流光照雒城 모종강은 유비가 사로잡은 장임을 죽여 방통의 원수를 갚지 않은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장임 같은 사람은 참으로 단두장군(斷頭將軍)이라고 할 만하다.’ 제갈량은 낙성이 함락되자 성도의 코앞에 있는 면죽관을 진격할 방안을 상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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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69) 낙봉파에서 죽은 방통, 엄안을 지혜로 항복시킨 장비
방통이 재삼 재촉하자 유비는 군사를 이끌고 진군했습니다. 봉과 용이 나란히 一鳳幷一龍 서로 도우며 촉으로 가네 相將到蜀中 겨우 반쯤 왔건만 纔到半路裏 봉은 낙봉파 동쪽에서 죽네 鳳死落坡東 바람은 비를 몰아오고 비는 바람을 몰아오네 風送雨雨送風 한나라 일으키려면 촉도를 열어야 하는데 隆漢興時蜀道通 촉도가 열렸을 땐 용만 홀로 남았네 蜀道通時只有龍 방통이 죽은 유비군은 크게 패하고 부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갈량은 장비와 조운에게 군사를 떼어 별도로 출발하게 하고 자신도 군사를 이끌고 서천으로 출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