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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도 진료 단축…요즘엔 "나중에 아프세요"가 덕담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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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병원에서 전립선암 3기 판정을 받은 A(66)씨는 언제 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수술이 한달째 밀렸는데, 1일부터 교수들마저 축소 진료에 들어갈 것이란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A씨는 "어제도 '수술할 수 있냐'고 병원에 전화했는데, 지금은 안된다는 답만 들었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전남대병원 암센터 가보면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면서 “지방대 병원 암 센터에 이렇게 많은 암 환자들이 있는데 전국에는 얼마나 많겠나”고 말했다.

의과대학·대학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줄이기로 한 1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 교수연구동 인근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대학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줄이기로 한 1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 교수연구동 인근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1일부터 축소진료에 나서면서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국 의과대학·대학병원 교수들은 전공의 공백에 따른 피로감 누적 등을 이유로 이날부터 주52시간 근로에 들어갔다. 중증·응급환자 진료 유지를 위해 외래와 수술을 대폭 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동네 병·의원 등을 운영하는 개원의들도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이날부터 자발적으로 ‘주 40시간’ 축소 진료에 들어갔다.

의과대학·대학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줄이기로 한 1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 교수연구동 인근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대학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줄이기로 한 1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 교수연구동 인근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교수들은 신체적·정신적 한계에 부딪힌 불가피한 선택이란 입장이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한 뒤 50일 동안 교수들은 수술과 외래 진료뿐만 아니라 입원환자 관리와 주·야간 당직 등을 도맡아왔다. 주요 병원들은 전공의 이탈 후 수술을 절반 가까이 줄였지만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부담도 갈수록 커졌다.

현장에서 실제 진료 축소가 체감되진 않았다. 병원에서 실제로 진료 축소 비율을 정하지도 않았고, 교수들도 자율적으로 과목별 인력 상황에 맞춰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 ‘빅5’ 대학병원 교수는 “교수들이 진료 축소한다고 해도 응급환자 콜이 왔을 때 ‘주 몇 시간 일했으니 안 하겠다’ 할 교수들은 없을 것”이라면서 “환자가 필요하다고 하면 모두가 달려갈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응급실은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현장의 이야기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이 이날 거미막하출혈(지주막하출혈)과 같은 뇌출혈 환자를 받지 못한다고 공지했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도 지난주부터 ‘비응급 경증 환자’는 수용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에선 교수 한 명이 응급실을 24시간 지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이사회 회장은 “그제(지난달 30일)에도 홀로 온종일 근무하면서 한 번에 13명의 환자를 봤다”면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환자, 뇌출혈 환자도 3~4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다른 대학병원들도 마찬가지로 교수 한 명이 혼자서 10명, 20명을 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지금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진짜 기적”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지침에 따라 개원의도 주 40시간 단축진료에 돌입한 1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동네의원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지침에 따라 개원의도 주 40시간 단축진료에 돌입한 1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동네의원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개원의들의 단체행동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참여율이 높진 않다. 의협은 2020년에도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휴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휴진율은 6~10%에 그쳤다. 당시 전공의 휴진율이 70~80%에 달했던 것과는 대조된다. 대부분 자영업자인 만큼 짧게 동참하고 그나마도 정상 진료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개원가 분위기가 그때와 다르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개원의들은 직역과 규모가 달라 공동 행동엔 어려움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개원한 의사들 사이에서도 좌절감과 분노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같은 건물에 있는 개원의들끼리도 ‘주 40시간 진료에 동참하자’는 의견이 점점 확산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지침에 따라 개원의도 주 40시간 단축진료에 돌입한 1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동네의원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지침에 따라 개원의도 주 40시간 단축진료에 돌입한 1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동네의원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1일부터 매일 진료 시간을 앞뒤로 30분씩, 1시간씩 단축했다고 공지한 성남시의 한 개원의는 “전공의들이 밖에 나가서 외롭게 저러고 있으니까 개원의로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했다”면서 “어제 의협에서 개원의 단축 진료를 말해서 환자들이 크게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줄였다”고 말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진료 축소 장기화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많이 이용하는 주말 진료가 축소되면 실질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영업자 성모(39)씨는 “4살, 2살 된 아이들은 매일같이 아파서 자주 찾는 동네 의원들이 있는데, 만약 주말이나 야간에 진료를 안 한다면 막막하다”고 말했다. 대장암 수술 후 항암 치료 중인 70대 아버지를 돌보는 보호자 B씨는 “아버지가 요즘 같은 때 아파서 미안하다”면서 “아버지가 아프더라도 ‘나중에 아프자’는 덕담을 친구들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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