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12년 만에 실업계 학생 뽑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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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12년 만에 실업 계열 학생이 입학하게 됐다. 성적만이 아니라 '가능성'까지 보고 신입생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경기도 하남시 한국애니메이션고교 3년 지승욱(사진)군. 그는 최근 KAIST 내년도 신입생 선발 합격통보를 받았다. KAIST에 따르면 실업계 학생이 들어온 건 1995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는 대입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뛰어나 합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군의 성적은 실업계 학교에서 중위권. 그러나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은 전문가 수준이다. 올 여름 열린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인 제23회 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서 '뮤직박스 스튜디오'란 프로그램으로 고등부 대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익혀 중학 시절에 이미 간단한 게임을 만들었다. 고교생이 된 뒤엔 게임이 아니라 게임 제작에 쓰이는 소프트웨어(게임 엔진)까지 개발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대학원생도 하기 힘든 수준이다. 이런 지군을 KAIST가 인정했다.

"미래의 빌 게이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합격시킨 것이다. "한번 프로그래밍에 빠지면 밤을 새워도 피곤한 줄 모를 정도로 열정이 넘친다"는 담임교사의 추천서도 합격에 한몫했다. KAIST는 이처럼 성적뿐 아니라 재능과 가능성을 평가해 신입생을 선발한다.

교수 12명으로 구성된 학생선발위원회는 각종 대회 입상 실적과 자기소개서.교사추천서.생활기록부 등을 면밀히 검토한다. KAIST 관계자는 "7월 부임한 서남표 총장이 '숨은 다이아몬드를 찾으라'고 강조한 뒤 성적 못지않게 가능성 평가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군처럼 가능성을 인정받아 내년도 KAIST 합격통지서를 받은 학생은 20명. KAIST는 이들이 수학.물리.화학 등 일반 과목에서 다른 학생에게 뒤지지 않도록 내년부터 대학원생을 개인 가정교사로 붙일 계획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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