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검사 주민청구제로 먹거리 불안·민원 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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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서구청 위생과 6급 주사인 이경재(48.여.사진)씨는 퇴근길에 종종 시내에 있는 대형 마트를 들른다. 지난주 이씨는 마트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두부와 콩나물을 샀다. 가족들을 위한 저녁 식사용 반찬거리가 아니다. 두부는 제조 일자가 의심스러워 보였고, 콩나물은 곧고 반질반질해 비료를 준 것 같아서였다. 이씨는 다음날 아침 출근하면 이 식품들을 대전시 보건환경연구원에 보낸다. 조사 결과는 곧바로 서구청 홈페이지에 올라간다.

대전 서구청 위생과는 다른 곳엔 없는 특이한 제도가 있다. '식품 수거 검사 주민청구제'다. 4월 이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저도 주부지만 주부들이 기생충 김치니, 불량 만두소니 먹거리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볼 방법은 없고… 그걸 시스템으로 도입해 해결하자는 것이었어요." 이씨의 말이다.

이씨 등 위생과 직원 4명은 주민들에게 설문지를 돌렸다. 질문은 "어떤 식품을 검사해 주기를 원하시나요"였다. 주민들은 분유.김치.두부 등 50개 품목을 꼽았다. 그걸 보건환경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다행히 불량 판정을 받은 식품은 없었다. 하지만 주민청구제는 10월에도 발동됐다. 이번에는 주민들이 60개 품목을 검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씨 등은 해당 식품을 구입해 보건환경연구원에 보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역시 인터넷에 올릴 방침이다.

주부 이선영(45.대전시 서구 탄방동)씨는 "옛날에는 민원 한번 하면 시간만 질질 끌면서 결과도 안 나와 불편하기 짝이 없었는데 우리 구청 위생과는 거꾸로 공무원들이 민원을 찾아다닌다"며 신기해 했다. 대전시 서구청 이계성 위생과장은 "식품위생 업무는 민원과 불만이 가장 많은 분야지만 이씨가 앞장서 일을 해주니 단 한 건의 잡음도 없다"고 말했다. 인구 50만 명의 대전 서구에서 이씨는 공무원에 대한 주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떨쳐낸 '작은 영웅'인 셈이다.

1981년 9월 충남 청양군청 대치면사무소에서 9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또순이'다. 8남매의 셋째 딸로 태어나 대학을 못 갔지만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한밭대 환경공학과(96년)와 배재대 국제통상대학원(2002년), 대덕대학 복지계열(2006년)을 야간으로 졸업했다.

2001년 1월 이씨는 서구청 내 여직원 모임인 '한울회'의 회장이 됐다. 이때 '10원의 사랑' 운동을 시작했다. 직원들의 책상 서랍 속에 굴러다니는 10원짜리 동전을 모으자는 것이다. 이씨는 "2년간 모은 돈이 50만원밖에 안 됐어요. 이 돈을 교회에 있는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썼는데, 구청 직원 900명이 불우이웃 돕기에 조그마한 관심이나마 갖게 한 게 더 큰 성과였죠"라고 말했다. 이씨와 서구청 여직원 10여 명은 6년째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서구 오동에 있는 정신지체장애인 시설인 '동심원'에 찾아간다. "용변 보게 하고, 목욕시키고, 손톱.발톱 깎아주고, 빨래 개어 주고, 청소하고… 그런 사소한 일을 하는 거예요. 거기 갈 때마다 내 한 몸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감사하게 되니 저희가 더 많이 배워 옵니다."

이씨는 2002년 대전시장이 주는 청렴공무원상을 받았다. 여기서 받은 성금 100만원은 소년소녀가장에게 써달라고 사회복지과에 맡겼다. 첫 발령지인 청양군청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 백명흠(50)씨와 서구청에서 함께 근무하는 이씨의 소원은 "공무원을 마친 뒤에도 봉사활동을 계속하는 것"이다.

서형식.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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