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아침 묵상

“이름 붙일 수 없는 큰 물건이 돼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고진하 시인

고진하 시인

세상의 존재들은 모두 이름이 붙어 있지. 으뜸의 존재라는 신들도 이름이 있지. 브라흐만이니 야훼니 붓다니 알라니 하는 호명은 사실 이름 붙일 수 없는 큰 물건에 편의상 붙여진 이름일 뿐. 사람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나보다 큰 존재인 우주적 신성에 속해 있다면, 어떤 가문이나 민족이나 인종이나 종파의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큰 물건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명함 속의 작은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바라며 사는 것은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고진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