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 암투 속 강택민 체제로 포장할 듯|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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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홍콩=전택원특파원>중국은 2000년까지 국민 총생산을 1980년의 4배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10년간 연평균6%의 성장률을 지속해야한다.
최근 성장률은 88년의 12%, 89년의 4%, 그리고 90년 상반기의 1·6%라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공식자료에서도 올 상반기 중 예산 내 국영공업기업 가운데 1만2천5백2개 기업체에서 1백27억원(인민 폐)의 적자를 보아 작년동기에 비해 88·9%의 결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해 물가상승은 89년 상반기의 2· 5%에서 올 들어 8월까지 평균 3·3%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경제부진은 조자양의「계획 있는 상품경제」의 도중하차를 수습하기 위한 긴축정책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2년에 가까운「치리정돈」 시기를 넘어 경제를 이끌어갈 새로운 정책 제시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붕 총리는 최근 그의「8·5계획정책담화」를 통해 8·5계획의 지도방향은 「안정적 경제건설」과 「개방· 개혁의 지속」이며, 이 기간 중 ▲농업 ▲건설 ▲개혁심화 ▲대외개방▲생활향상의 5개 항목에 비중이 두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붕은 88년 이래의 긴축정책이 91년까지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91년 이후의 정책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분석가들은 이붕의 경제정책기조가 중앙차원의 계획· 통제, 지방차원의 개방· 개혁을 병행시키는 양면성을 지니면서 우선 7중전회의 연내개최를 맞추기 위한 미봉책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고있다.
「조정과 개혁」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안정과 발전」 사이의 당내 논쟁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음은 그간의 이붕 자신의 대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8월 전국공업생산공작(전략) 회의에서 이붕은 「지속·안정· 협조」의 「6자 방침」을 제시했으나 개혁·개방에는 일체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입 경제체제개혁위원회 주임 진금화가 지난 10월『90년대에는 개혁· 개방을 보다 신속하고 유효하게 추진해야한다』면서 이를 등소평의 소신임을 밝히자 이붕은 곧 이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다.
이붕 등 보수파의 입장은 『계획경제와 시장조정기능을 유기적으로 결합』 하는 정책의 추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는 계획성이 그 중심이다.
경제부진의 타파가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면서 이것이 곧 계획보다 상품경제를 위주로 한조자양 식 경제노선에의 회귀로 연결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북경의 경제전문가들은 대부분 치리정돈시기의 계획성 강조에는 일단 동조하면서도 장기적 정책으로서 계획경제와 시장조정기능의 배합에는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
정부와 학계는 「비교적 계획적인 상품경제체제의 수립」·이중국의 개방·개혁의 모델이어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활발한 토론과 소신이 피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6·4사대이후의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8·5계획의 초기에 치리정돈이 유지된다고 해도 결국은 시장역할의 회복과 경쟁원리의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시장기능 중심의 경제노선이 필연적으로 등장함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치리정돈기간 중 중앙계획경제의 운영을 주도해온 야오이린(요의림) 부총리가 조자양 노선의 텐지윈(전기운)으로 교체될 것이라는 소식을 7중 전회 이후의 경제노선과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것이다.
특히 7중 대회개최가 알려진 이후 그 동안 보수파의 공격표적이 되어왔던 이서환이 지난8일 개혁·개방은 전 인민의 요구이자 사회주의 발전의 필연적 추세로서 등소평의 주도로 이루어져온 일관된 정책임을 강조했다.
이 같은 변화가 6·4사태 이후 체제 안보 면에서 기세를 올린 보수세력과 상대적 수세에 처했던 개혁세력간의 역전을 시사하는 것이라면 이붕의 총리직 경질까지도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등소평은 건강악화설과는 달리 7중 전회에서의 보·혁 역전의 공작을 배후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해왔음을 엿보이고 있다.
등이 보수파의 독주에 적절하게 제동을 걸어온 것이나 최근 들어 4명의 자녀를 심천 경제특구 기념행사, 일본친선방문, 아시아 3개국 순방 등의 역할을 주어 자신의 활동을 사실상 대행케 하고 있는 처도 변화가운데 하나다.
등소평의 정치적 권위가 소멸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7중 전회는 강택민 체제의 기반구축과 이를 통한 개혁·개방에의 궤도진입과 밀접한 연관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등소평이 중국 근대화라는 제2의 혁명이 호요방·조자양의 거듭된 실각으로도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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