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REAL ESTATE] '기획 부동산'에 걸리면 약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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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서울 강남구 신사동 H영농법인은 땅 한 평을 주식 4주로 환산해 주당 4750원에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실제로는 500~2000평 단위로 땅을 분양하면서 명목상으로는 125~500주의 주식을 950만~3800만원에 파는 식이다. 이 영농법인 이모 사장은 "투자 규모가 소액이어서 찾는 사람이 많다"며 "노후가 불안하거나 불황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주로 찾아온다"고 털어놨다.

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책에도 불구하고 토지시장에 각종 탈.편법 사례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H영농처럼 간판만 '영농조합'으로 바꿔 단 기획부동산(땅을 싸게 사들여 전화 등을 통해 비싼 값에 쪼개 파는 업체)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가 하면, 소송을 통해 토지를 분할하는 새로운 수법도 등장했다.

◆탈.편법 행태도 다양=요즘 영업 중인 기획부동산이 종전과 달라진 점은 땅을 직접 분양하는 대신 '농장 지분'을 주식 형태로 바꿔 파는 새로운 수법을 쓴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영농법인 등의 간판을 달고 땅을 쪼개 파는 변종 기획부동산은 서울에만 20여 곳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대규모 땅을 싸게 매입한 뒤 '농장 지분을 사면 몇 년 안에 많은 이익을 돌려준다'며 시세보다 비싸게 팔고 있다.

기획부동산이 영농법인을 내세우는 것은 법인 설립이 쉽고 영농법인의 경우 농지나 임야를 소유하거나 처분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토지컨설팅업체 다산서비스 이종창 대표는 "최근에는 사슴이나 타조농장 지분도 투자 권유 대상"이라며 "현장을 둘러보고 들뜬 마음에 바로 투자를 결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분할이 불가능한 땅은 소송을 통해 합법적으로 분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모(57)씨는 4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땅 7000여 평을 지인 6명과 공동명의로 샀다. 이들은 6월 횡성군에 분할허가를 신청했으나 군은 부지 경사도가 높고 투기가 예상된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자 이들은 곧바로 공유물분할청구소송을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토지를 각각 구분소유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외지인이 소송을 통해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있는 땅의 명의를 합법적으로 이전받는 방법도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이모(46)씨는 최근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땅 1000여 평을 친구 3명과 사면서 명의는 전 주인인 한모씨 그대로 놔뒀다. 명의이전 소송을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실제 땅주인은 이모씨 등 4명'이라는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거래허가를 받지 않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의 땅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경기도 용인 등에서는 '쪼개 허가받기'라는 편법이 성행하고 있다. 자연환경보전권역인 양지면의 B전원주택 단지는 부지 면적이 총 2만1000여 평으로 개발허가를 받기 힘든 사업이다. 용인시 규정상 부지 면적이 1500평을 초과할 때는 도시계획위원회 자문 등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업체는 지난해 10여 차례에 걸쳐 부지를 1500평 이하로 나눠 별다른 문제없이 허가를 받았다.

◆유의점은 없나=편.탈법 토지거래 행위는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우선 영농법인이 분양하는 토지의 경우 해당 지자체에 개발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공동지분 등기를 한 사람들 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분할이 안 될 수 있다. 기후.작황.판로.수요변화 등 변수가 많아 투자 대상이 되는 작물이나 동물의 수익성이 불확실하다. OK시골 김경래 대표는 "급조된 영농법인은 사업 내용이 부실해 조심해야 한다"며 "특히 장뇌삼은 전문 재배기술이 없으면 성공 확률이 낮다"고 말했다.

소송을 통한 토지분할도 마찬가지다. 공동명의자의 의견이 다르면 법원에서 경매 처분을 통한 현금 분할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지지옥션의 강은 팀장은 "다툼이 있는 공유토지는 경매를 통해 낙찰금을 공동 소유자들에게 나눠준다"며 "이 경우 낙찰가가 시세보다 낮아져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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