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굿은 연극”주장 이윤택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올해 연극계는 부산에서 상경한 「문화게릴라」이윤택씨(38·연출가)가 한바탕 중앙무대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한해였다.
이씨는 89년 서울 무대를 몇 번 기웃거리다 올해는 아예 거처를 서울로 옮기고 잔잔한 연극계에 끊임없이 파문의 돌멩이를 던져댔다.
「문화」와 「게릴라」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단어로 만들어진 그의 별칭 「문화게릴라」는 여러모로 그를 잘 설명해준다.
그는 게릴라답게 문화의 여러 영역을 들쑤시면서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왔다. 그는 원래 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83년 첫 시집 『시민』과 산문집 『우리시대의 동인지문학』을 냈다.
87년에는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의 시나리오를 써 대종상 각본상을 받았다. 최근엔 『장군의 아들』2편 시나리오를 탈고했다.
그러나 그를 「게릴라」라고 불러 어색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도전적인 차원을 넘어 호전적인 느낌까지 주는 창작태도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왕성한 활동력이다.
그의 호전성이 드러난 사건은 지난 8월 이후 연극전문지 월간 『한국연극』을 통해 계속된 「굿 논쟁」이다. 그는 굿 형식을 도입한 자신의 작품 『오구-죽음의 형식』을 보고 『굿은 연극이 아니다』고 혹평한 평론가 이상일 교수(성균관대)에 대해 『무슨 소리냐, 굿은 연극이다』고 즉각 반격했다.
그는 최근 『한국연극 9월 호에 반론을 기고해 논쟁을 일으킨 것은 철저히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그는 서구 정통 극만을 인정하려는 기성연극계와 운동차원의 선 동 극을 고집하는 일부 민중극 운동가들을 향해 양날의 칼을 휘두른 것. 동시에 자신이 추구하는 연극이 자랄 공간을 스스로 개척한 것이다.
한해동안 쉴새없이 뛰어다닌 그의 공연활동도 통념을 뛰어넘을 정도로 방대하다.
지난해 12월 『오픈커플』공연을 연출했던 그는 올해 연초부터 새 작품 준비에 착수, 4월에 동독작가 하이네 뮐러 작 『청부』를 내놓았으며, 6월에는 굿 논쟁의 불씨가 됐던 화제작 『오구-죽음의 형식』을 공연했다. 86년 자신이 만든 부산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작인 『오구-』는 경상도지방의 『오귀 굿』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
같은 해 6월 그는 서울시립무용단의 무용공연 『불의 여행』을 연출했으며, 8월에는 문학부주최 8·l5 경축행사인 『광복45주년 기념 남북민족 대 교류 경축 화해의 문화 대잔치』를 총 연출하기도 했다. 또 같은 해 8월 실험극장 초청으로 이현화 원작 굿극 『산 씻김』을 한달 간 공연한 뒤 9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열린 실험극 축제「앨리스 페스티벌」에 참가했다.『산 씻김』은 죽은 자의 영혼을 정화하기 위한 「씻김굿」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강제로 치르는 충격적인 내용과 형식으로 일본연극계를 강타, 현지공연 전문지의 지면을 한꺼번에 장식했었다.
이어 그는 『오구…』를 가지고 11월 다시 방일, 동경국제연극제에 참석해 또 한번 일본연극계에 우리 연극의 실험적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90년이 저물어 가는 요즘 그는 자신의 1년간 활동을 마무리지을 대형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연출중이다. 이 작품을 10년간 연말마다 공연해온 현대극단 측이 올해엔 연출을 그에게 맡겼다. 그는 파격적인 연출을 기대하는 극단의 요구에 부응,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무대를 꾸미고 있다.
자신의 일부를 불태워 작품을 만들어내는 듯한 그의 정열적인 활동은 주위로부터『단명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자아낼 정도다.
그러나 한발 짝 떨어져서 볼 때 이윤택씨의 눈에 띄는 활동 상은 올해 연극계 전반의 상대적인 침체를 반영한다.
올해 연극계는 한마디로 『여러 가지 외풍에 사건은 많았으나 국내연극계 자체내의 실속 있는 발전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것이 전반적인 결산 평이다.
가장 큰 사건은 북방바람에 실려온 소련극단의 내한공연이었다.
5월 『벚꽃동산』을 공연했던 모스크바 말리 극장은 스타니슬라브스키로 대표되는 정통사실주의 연극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수 백년의 전통극단에서 수십 년간 갈고 닦은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는 「교과서」로 평가될 정도였다.
7월에 『햄릿』을 공연했던 유고 자파드 극단 역시 현대적 서구 극의 최고수준을 보여주었다. 특히 천장에서 떨어지는 원통형 수직조명은 강력한 명암의 상징적 무대로 호평 받았으며, 고전에 대한 재해석·신선한 연출은 공연예술의 무한한 상상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들 공연은 일부 연출기법이 국내무대에서 원용되는 직접적인 영향 외에도 국내연극인들의 시야를 넓혀준 좋은 기회로 평가받았다.
연극외적인 외풍으로는 정부당국과의 마찰이 연중 계속 연극계를 괴롭힌 것. 1월 서울시의 세종 문화회관별관 시의회전용 결정, 2월의 동양극장철거로 대형공연장 두 곳이 사라져 연극계의 반발을 샀다. 이어 5월에는 대학로 일대 소극장에 「불법용도변경에 따른 과태료」가 부과됐으며, 7월에는 실험극장대표가 포스터 불법부착문제로 형사입건 되기에 이르렀다. 쌓여온 고질병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결과 연극계 최대행사인 「서울연극제」기획이 펑크 나기까지 했다.
이 같은 외풍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연극협회 간부에 대한 내부적 비난도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연극계는 내년을 「연극·영화의 해」로 정한 문화부의 지원에 새로운 기대를 걸고있다.
서울연극계에 뛰어들어 1년을 좌충우돌한 이윤택씨는 그 동안 겪은 문제점에 대한 정리도 잊지 않는다.
『지금은 문화 전체가 해체되는 격변의 시기다. 연극계에서도 고정관념을 깨 가는 진통이 있어야 한다. 그 책임은 연극계를 이끌어 가는 중견·원로에게 더 많다. 젊은 세대의 실험을 객관적으로 분석·지도할 수 있는 저력과 함께 이를 포용할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