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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익우선의 전방위 외교시대(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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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대통령의 방소가 갖는 현실적 의미
노태우 대통령이 13일 소련방문길에 오른다. 불과 반년 남짓 짧은 기간에 정상회담과 수교과정을 거쳐 외형면에서 화려한 면모를 보였던 한소의 외교적 노력이 이번 방문으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협력단계로 들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노 대통령의 소련방문은 우리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이라는 역사적 상징성뿐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과 민족통일의 외부적 여건정착을 위한 노력이라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 그와 같은 전도를 향한 전진의 바탕으로서 6·25와 KAL기 격추문제에 대한 소련측의 책임문제 등 과거청산도 이룰 계기가 된다는 데서 기대되는 바 크다.
그 동안 한소 관계의 진전을 가져온 북방외교의 궁극적 목표가 남북한 화해와 통일기반 조성에 있었던 점에서 본다면 이번 방문은 첫 단계의 완결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중간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한고위급회담을 비롯해 축구단·음악인 교류 등 대화의 통로가 하나씩 마련되고 있는 것도 그 주된 요인이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남북한의 의지에 있지만 한소 관계의 발전과도 연관되어 있다.
분단과 남북한 대치를 가져온 주요한 배후세력의 하나였던 소련이 이제 안정적 요소로 역할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어느 정도의 강도가 있는지 우리는 이번 노 대통령의 소련방문에서 확인하고자 한다.
그런 뜻에서 한반도에서의 무력대결 배제,평화정착 등을 내용으로 한 공동선언이 예상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비록 당장은 선언적 의미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그 원칙은 앞으로 남북한 문제에서 소련이 과거와 같은 분열지향적 편향성을 떠나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체제가 한반도에 정착하도록 궤도수정을 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소련의 이러한 대한 접근자세는 그들이 당면한 국내문제와도 관련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급박한 경제사정을 우리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완화하자는 의도다.
소련과의 경제교류는 새로운 협력대상의 확보와 시장개척이라는 측면에서 경제의 활로를 찾으려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소련이 기대하고 있는 합작투자 등도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협력의 규모와 속도를 어떻게 조절하는가에 우리 나름대로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소련측에 대해 25억∼30억달러 수준의 경협 자금제공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우리가 무역이나 합작투자형태를 취하려는 데 대해 소련은 현금차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있는 우리 형편에 이러한 막대한 자금이 적절한 수준인지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소련이 현재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극심한 혼란상태에 있다는 점,또 경제교류 확대에 필요한 제도가 소련에 완비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 고려돼야 한다. 또 경제제도의 차이에서 오는 장애요인과 위험부담도 하나 둘이 아니다.
한반도 안정의 당위성,정상외교의 외형적인 화려함에 가리워 이러한 문제들이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번 소련방문이 지금까지 서방 일변도로 치우쳐온 우리의 정치적·경제적 위상을 탈피하여 동서의 중심부에서 전방위로 확트인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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