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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 아이슬란드의 외침 “이게 평등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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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지난 24일, ‘오로라의 나라’ 아이슬란드가 24시간 동안 멈춰섰다.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고, 전국 은행 점포가 휴업하며, 병원도 응급실만 환자를 받았다. 아빠들은 재택근무를 하든지 아니면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남성 대신 그 역할을 떠맡았던 수만 명 여성이 수도 레이캬비크 중심을 ‘점령’하고 “이게 평등이냐?”(You call this equality?)를 외쳤다.

이날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직장 내 남녀 간 임금 격차와 성폭력 문제를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직장은 물론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24시간 동안 손을 떼는 시위에 돌입했다. 여성인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도 연대의 의미로 집무실을 닫고 내각 회의를 취소했다.

수 만 명의 여성들이 아이슬란드 수도에서 남녀 간 임금 격차와 성폭력을 반대하는 ‘24시간 총파업’을 벌였다. [AP=연합뉴스]

수 만 명의 여성들이 아이슬란드 수도에서 남녀 간 임금 격차와 성폭력을 반대하는 ‘24시간 총파업’을 벌였다. [AP=연합뉴스]

아이슬란드는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1980년 세계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고, 2009년에는 역시 세계 첫 동성애자 여성 총리가 임명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발표한 세계성격차보고서에 의하면 아이슬란드의 남녀 동일 노동 임금 격차는 13%로 집계됐다. 미국(17%)보다 낮고, 한국의 31%와 비교하면 상당히 양호한 수치다. 그런데도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종일 파업’에 나선 데는 ‘진정한 평등은 아직 요원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번 파업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1975년 10월 24일. 당시 ‘파업’ (strike)이라는 단어가 너무 과격한 것이 아닐까 꺼리는 여성들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 운동가들은 그날을 ‘크벤나프리(Kvennafri)’, 즉 ‘여성 휴무’로 바꾸어 부르며 거리로 나섰다. 48년 전 집회에 참석했던 한 페미니스트 운동가는 호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날 저녁 레이캬비크 주택가에는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했어요.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거부하자 남자들이 어쩔 수 없이 요리하다 고기를 태우고 말았던 것이죠.” 지금이야 고기 잘 굽는 남자도 많지만 당시 아이슬란드 남성들에게 요리는 ‘넘사벽’이었나 보다.

하루의 파업으로 사회가 당장 바뀌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몸짓이 여성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일깨우는 데는 한몫 할 것 같다. 호주 등 일부 나라에선 아이슬란드 자매들과 연대해 24시간 파업을 실행하자는 의견도 속속 나오고 있다고 한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다만 그런 충격요법을 선택하지 않아도 사회가 보다 평등하게 움직여주길 바라는 마음 또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