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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 대혼란…공화·민주 양당 극단 진영의 적대적 공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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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워싱턴총국장

김형구 워싱턴총국장

“Sit your ass down.”

‘엉덩이 대고 앉기나 해’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비속어다. 지난 19일 미국 공화당의 비공개회의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을 끌어내린 맷 게이츠 의원이 발언하려 하자 구원이 있는 매카시 전 의장이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234년 미 의회 역사상 초유의 하원의장 해임안이 지난 3일 가결된 이후 23일로 3주가 됐다. 그동안의 파행과 혼란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다. 미 권력 서열 3위의 하원의장을 자당 의원이 주동이 돼 몰아내는 장면은 서막에 불과했다. 후임 의장 후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가 반대파 설득에 실패해 후보 자리를 양보한 것은 다가올 암운을 예고했다. 스컬리스에 이어 2위였던 짐 조던 의원이 출마했지만 3차까지 가는 본회의 투표에서 당내 이탈은 도리어 늘어만 갔고 후보직마저 반납하는 굴욕을 맛봤다.

지난 3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 해임 이후 23일 기준 21일째 공석 상태인 하원의장석. [AFP=연합뉴스]

지난 3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 해임 이후 23일 기준 21일째 공석 상태인 하원의장석. [AFP=연합뉴스]

공화당 내 자성의 목소리가 없진 않았다. 일부는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인 게이츠 의원을 “charlatan”(사기꾼)이라 부르며 개탄했다. 당 원로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게이츠를 내쫓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게이츠 의원에게는 센 뒷배가 있는 듯하다. 특히 트럼프의 책사로 꼽히는 스티브 배넌이 막후 지휘자라는 보도(뉴욕타임스)가 나왔다. 배넌은 매카시 전 의장 축출 다음 날 자신의 팟캐스트에 게이츠를 초대해 더 극우적인 법안을 낼 것을 요구하면서 청취자들의 정치자금 기부를 유도했다. 강성 지지층을 조직화하고 정치자금을 고리로 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작동한다는 얘기다.

민주당 책임도 작지 않다. 민주당 ‘조기 수습파’ 사이에서는 시급한 정부 예산안 및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안보지원 패키지 처리 등을 위해 공화당 소속 패트릭 맥헨리 임시의장의 권한을 확대시켜 문제를 풀자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민주당 대다수는 ‘전략적 방관파’다. 이들은 공화당 내홍으로 하원 마비가 장기화하고 연방정부 셧다운이 현실화하면 공화당 비판 여론이 높아질 거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문제 수습이나 해결보다 혼란과 분열이 ‘남는 장사’라고 여기는 민주·공화 양당 내 극단주의의 적대적 공생이 이번 사태 뒤에 똬리를 튼 셈이다. 문제는 피해가 엉뚱한 시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연방정부 셧다운은 많은 불편을 낳는다. 우크라이나에서, 이스라엘에서 한시가 급하게 미 정부 지원 물자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속이 타들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