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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잔러가 황선우 손 들자 함성 쏟아졌다…아시아 수영 천재들의 특별한 우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황선우(20·강원도청)는 27일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경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1분44초40의 대회 신기록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판잔러(19·1분45초28)는 중국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그 뒤를 이어 결승선에 도착했다. 황선우가 금메달, 판잔러가 은메달이었다.

물 밖으로 나온 둘은 자연스럽게 웃으며 서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판잔러는 황선우의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려 '자유형 200m 아시아 챔피언'을 예우했다. 황선우는 "중국에선 판잔러가 수퍼스타인데, 그런 친구가 내 손을 들어줘서 수많은 중국 관중이 환호를 보내줬다. 무척 기분 좋았다"며 웃었다.

판잔러(왼쪽)가 27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선 레이스가 끝난 뒤 금메달을 딴 황선우의 오른팔을 들어 관중의 환호를 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잔러(왼쪽)가 27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선 레이스가 끝난 뒤 금메달을 딴 황선우의 오른팔을 들어 관중의 환호를 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선우와 판잔러의 라이벌 대결은 이번 아시안게임 수영 종목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빅 매치' 중 하나였다. '수영의 꽃'으로 통하는 남자 자유형 단거리에서 세계 정상급 기량의 두 선수가 아시아의 왕좌를 다퉜기 때문이다. 황선우는 2년 전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아시아 최고의 자유형 단거리 선수로 올라섰고, 판잔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연기된 지난 1년간 무섭게 성장해 황선우를 따라잡았다.

두 차례 진검승부의 결과는 실제로 1승 1패, 무승부였다. 서로의 주 종목에서 금메달을 하나씩 챙겼다. 지난 25일엔 판잔러가 자유형 100m에서 아시아 신기록(46초97)으로 우승했다. 황선우는 동메달을 땄다. 이틀 뒤엔 황선우가 자유형 200m에서 아시안게임 신기록과 한국 신기록을 동시에 새로 쓰며 금메달을 사수했다. 판잔러는 한국의 이호준(1분45초56)을 막판 스퍼트로 추월해 은메달을 가져갔다. 황선우는 "아시아에서 이렇게 함께 달릴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 좋다. 앞으로도 함께 선의의 경쟁을 하면, 둘 다 더 좋은 기록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판잔러(왼쪽)가 27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딴 황선우의 오른팔을 들어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잔러(왼쪽)가 27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딴 황선우의 오른팔을 들어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선우와 판잔러는 한 살 차이다. 곧 수영 선수로서 전성기 나이에 접어든다. 향후 수년 간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과 같은 주요 국제대회에서 치열한 메달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당장 내년 2월 도하 세계선수권과 7월 파리 올림픽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레이스가 끝나는 순간 둘은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형-동생' 사이로 돌아간다. 수영에는 국제대회 경기가 끝난 뒤 원하는 타국 선수와 수영모를 교환하는 문화가 있는데, 황선우와 판잔러도 지난해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수영모를 맞바꾸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25일 열린 남자 자유형 100m에서는 판잔러가 금메달을 땄고(왼쪽 사진), 27일 치른 200m에서는 황선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뉴스1

25일 열린 남자 자유형 100m에서는 판잔러가 금메달을 땄고(왼쪽 사진), 27일 치른 200m에서는 황선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뉴스1

특히 판잔러는 늘 황선우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해왔다. 공동취재구역에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황선우에게 조용히 다가가 "짜요(중국어로 '힘내'라는 뜻)"를 외치고 지나갈 정도다. 자유형 100m 우승 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선우와 나는 경쟁자인 동시에 친구다. 황선우가 좋은 경기를 해서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화통신은 "판잔러는 황선우와 다비드 포포비치(루마니아)를 우상으로 여긴다. 판잔러의 눈에는 황선우가 '아시아의 빛'이다"라고 썼다.

황선우 역시 판잔러에게 호감과 경외를 동시에 느낀다. 황선우는 "판잔러와 최근 2년간 자주 만나면서 친밀감이 많이 형성됐다. 판잔러는 친근하고 장난스러운 동생이자 멋진 수영 선수"라며 "판잔러의 이번 자유형 100m 기록은 존경받아 마땅할 만큼 대단했다. 아시아 자유형에서 이렇게 좋은 기록을 계속 내는 걸 보니 나도 본받고 싶다"고 치켜세웠다.

황선우(오른쪽)가 2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100m 결선 레이스가 끝난 뒤 금메달을 딴 판잔러 쪽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황선우(오른쪽)가 2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100m 결선 레이스가 끝난 뒤 금메달을 딴 판잔러 쪽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수영팬들은 황선우와 판잔러의 한중(韓中) 라이벌 구도를 10여년 전 박태환(한국)-쑨양(중국)의 관계와 비교하곤 한다. 박태환과 쑨양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전후로 열린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자유형 400m 최강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러나 이들도 수영장을 벗어나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라이벌은 단순한 '적'이 아니다. 서로의 목표의식과 고충을 공유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황선우는 "판잔러와 내가 서로 적대적이지 않은, 좋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레이스를 이어나가는 건 서로에게 무척 긍정적인 일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둘 다 열심히 훈련해서 계속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함께 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멋진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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