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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가장 싸다"…일본여행 러시 부른 '역대급 엔저' 전망

중앙일보

입력

‘슈퍼 엔저(低)’가 길어지고 있다. 그간 상식으로 여겨진 ‘100엔=1000원’ 공식이 힘을 잃는 분위기다. ‘역대급’ 엔저를 이끄는 일본의 ‘나홀로 금융완화’가 당분간 이어질 태세여서 현재의 기록적인 엔저 현상이 적어도 연말까지는 이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원화에 대한 일본 엔화 가치가 약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일본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1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승객들이 탑승 수속을 하기 위해 줄 서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원화에 대한 일본 엔화 가치가 약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일본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1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승객들이 탑승 수속을 하기 위해 줄 서 기다리고 있다. 뉴스1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1~22일) 원·엔 재정환율은 평균 100엔당 903원을 기록했다. 월평균 원엔 재정환율은 지난해 1월 100엔당 1040.67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4월부터 1000원을 밑돌았다. 이후 올해 5월 969.27원을 기록하는 등 900원대 후반을 기록했다가 6월(916.96원), 7월(910.09원) 크게 낮아졌다. 지난달 914.06원으로 다소 반등했지만, 이달 들어 다시 내려갔다. 오후 3시 30분 하나은행 고시 기준으로 이달 15~20일에 4거래일 연속으로 현재 900원을 밑도는 등 800원대 원·엔 환율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100엔당 800원대의 원엔 재정환율은 지난 2015년 6월 25일 이후로 올해 이전에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그만큼 엔화 값이 싸졌다는 의미다. 일본 여행객에겐 호재다. 최근 글로벌 여행 업체 부킹닷컴이 자사 사이트에서 한국인들의 ‘숙박 장소’ 검색을 분석한 결과 추석 연휴 기간에 여행하고 싶은 해외 도시 상위 5곳 중 3곳이 일본 도시다. 도쿄가 1위를 기록했고 오사카는 3위, 후쿠오카는 5위에 자리했다. 지난해 추석 기간엔 상위 5곳 중 일본 도시가 한 곳도 없었다. 기록적인 엔저 영향이 있었다는 게 부킹닷컴 측 설명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엔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일본의 통화 정책 요인이 가장 크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에서 긴축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일본은행(BOJ)은 나홀로 완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2일 BOJ는 전날부터 이틀간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가 종료된 뒤 “만장일치로 현행 금융완화정책 유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저물가 대응 및 경기 부양을 위해 2016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뒤 단기금리를 –0.1%로 묶어두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물가안정 목표의 지속적, 안정적인 실현을 전망할 수 있는 상황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인내심을 갖고 초 완화 통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책 기조를 당분간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이러만큼 엔화 약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는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려면 일본의 통화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며 “현재는 일본의 경제 상황을 볼 때 일본이 단기간 내에 정책 기조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고 짚었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로 일본 수출이 전년 대비 플러스 증가율 기록할 수 있었다”라며 “3분기 들어 수출 역성장이 이어진 탓에 일본은행이 장기간 엔화 약세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런 엔저가 정부와 수출 기업엔 달갑지 않다. 지난해 10월부터 내리막을 걷던 수출은 이달 1~20일 1년전 보다 9.8% 늘며 반등 조짐을 보였다. 그런데 엔저는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한국 자동차·철강 등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과거보다 환율 영향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엔저는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엔저에 따른 일본 여행객 급증은 경상수지에도 악영향을 준다.

다만 내년에는 일본이 통화정책을 방향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 13일 46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은 내년 상반기 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할 것이라고 답했다. 배현기 대표는 “시기를 예단할 수는 없으나 멀지 않는 미래에 일본이 통화 정책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현재 엔화값이 가장 싼 시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적어도 엔화값이 더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며 “여윳돈이 있다면 엔화를 모아야 할 시기”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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