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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홍영희-윤행노씨댁 유밀과·나이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가풍을 이어간다는 것은 핵가족 시대에 살고있는 현대 가정으로서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집안의 빼어난 솜씨를 후대에 전해주고, 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솜씨를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는 가정들이 적지 않다.
조리·바느질·뜨개질·그림·매듭·붓글씨 등 다방면에 걸쳐 여성끼리 대를 물려가며 전해지는 명가의 솜씨를 살펴보고 그 속에 깃들인 참 정신을 되새겨 보는 연재 기획 기사를 마련했다.【편집자주】
서울 강남구 역삼동 698 붉은 벽돌색 2층집의 4평 남짓한 주방은 안방마님 홍영희씨(56·정진우 전 법제처장 부인)와 2층에 살고 있는 며느리 윤행노씨(27)의 둘도 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충청도 소론댁 음식 솜씨를 이어받은 시어머니 홍씨와 이제 결혼 3년째로 접어든 며느리 윤씨가 조리 요령을 주고받으며 고부의 정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홍씨가 전해주는 음식솜씨는 친정·시댁 양가로부터 이어받은 것. 12세때 어머니를 여윈 홍씨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이는 그의 할머니였다.
이씨로 불렸던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은 것으로 평판이 자자해 부친의 친구들이 곧잘 『자네 집에 가서 먹자』며 찾아와 손님 치르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그는 기억한다.
시어머니(조차희씨·77년77세로 작고)또한 정씨댁 대소가 일을 도맡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빼어났다.
이들로부터 구절판 등 궁중요리를 주로 익혔던 홍씨는 직접 만들어보지 않고 눈짐작만으로 익혔던 음식도 생각을 더듬어가며 나름대로 조리법을 정리해 며느리에게 일러주곤 한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윤씨는 다행스럽게도(?)조리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어머님의 기억이 퇴색하기 전에」한가지라도 더 배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윤씨는 시어머니의 손대중·눈대중에 의한 조리를 계량화, 재료마다 무게를 달고 스푼으로 재어 정확한 레시피(요리법을 적은 책)를 만들어 노트에 정리하고 있어 윤씨 세대의 달라진 점을 보이고 있다.
이 집의 대표적인 음식은 유밀과와 나이 떡. 제사 때나 손님상에 자주 오르는 유밀과는 늘 바탕(기름에 튀겨내기 직전의 재료)을 만들어 두고있어 지금까지 단 하루도 바탕이 떨어진 날이 없을 정도다.
찹쌀과 메주콩을 하루정도 불린 후 콩 껍질을 벗겨함께 빻은 뒤 소주와 물을 넣어 반죽한 다음 밤톨 크기만큼 떼어 찜통에 쪄서 다시 절구에 쏟아 붓고 방망이로 쳐서 일정크기(가로2.7㎝ 세로2.7㎝ 두께0.4㎝)로 잘라 실내바닥(섭씨25도)에서 말린 것이 바로 바탕이다. 이를 비닐종이에 싸서 냉동실에 보관해두었다가 필요한 때 꺼내 기름에 튀긴 후 물엿에 담갔다가 설탕·잣가루·찰벼튀긴 것·대추·잣 등을 이용해 고물을 묻히고 꽃 모양의 장식도 곁들여 아름답게 만든 것이 바로 이 댁의 유밀과다.
속살처럼 정겹게 살라는 뜻에서 첫날밤을 지낸 신랑에게 처가에서 아침에 내오는 나이 떡(신랑 나이만큼 개수를 채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송편)은 특히 페퍼민트와 슬로진의 고운 초록색·붉은 색을 띠게 해서 맛과 멋을 함께 지닌 것이 이 댁의 특징.
결혼1주년 기념일에 시어머니 홍씨로부터 남편(정두영씨·33·국제종합금융근무)과 자신의 나이를 합한 나이 떡을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받았던 윤씨는 『먹기조차 아까워 며칠씩 두고보면서 둘이서 기념촬영까지 했다』고 말하며 「지금까지 가장 감격스런 선물」로 기억하고 있다.<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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