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이란 동결자금 8조원 해소, 양국관계 회복 준비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 18일 미국 뉴욕의 UN 본부에서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났다. [AP=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 18일 미국 뉴욕의 UN 본부에서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났다. [AP=연합뉴스]

미국·이란, 상대국 수감자 5명 맞교환의 대가로

매장 4위 원유 부국과 교역 활성화 전기 삼아야

지난 4년여 동안 우리나라 은행에 묶여 있던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60억 달러(약 8조원)가 풀렸다. 외교부와 기획재정부는 어제 “그간 (미국의) 대이란 금융제재로 인해 한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 자금이 관련국 간의 긴밀한 협조하에 최근 제3국으로 성공적으로 이전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동결자금 해소는 미국과 이란이 상대국 수감자를 5명씩 맞교환하면서 그 대가로 성사됐다. 수감자 맞교환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참석을 앞두고 카타르가 중재해 성사됐다.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동결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맺었던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부정하며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당시 한국에선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계좌가 있었기에 이란은 이를 통해 한국에 석유를 수출한 대금을 받아왔는데 미국의 제재로 자금이 동결되면서 한국과 이란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었다. 급기야 2021년엔 석유 수송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던 한국 선박과 선원을 이란 측이 나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1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 파병된 국군부대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UAE의 적은 이란”이라 발언해 이란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번 동결자금 해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이란 관계가 단기간에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제재 이유가 된 핵 합의의 이해당사국인 미국과 이란 관계의 회복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장은 대이란 정책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동결 해제된 자금이 식량·의약품·농산품 등의 용도로만 쓸 수 있게 한정했다.

한국은 동맹답게 미국과 적극 공조하는 것이 큰 방향에서는 맞지만 매장량 세계 4위의 원유 부국인 이란과의 관계도 최악의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다. 서울 강남에는 이란의 수도 이름을 딴 ‘테헤란로’가, 이란 수도엔 ‘서울로’가 생겨날 정도로 양국은 오랜 기간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이란과의 교역 규모는 120억 달러가 넘었을 정도로 한국의 주요 교역 대상국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 관계가 나빠지면서 중간에 끼인 한국 기업들이 장기간 큰 피해를 보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동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란과 핵 합의 복원 협상이나 정상회담 등 다양한 카드를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은 완전한 관계 정상화가 어렵겠지만, 외교부는 이번 동결자금 이슈 해결을 계기로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준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