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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핵 고도화하는데 9·19 자화자찬만 한 문 전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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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5주년 행사서 “남북관계 파탄, 경제 후퇴” 정부 비판

북 17차례 위반하고 동맹 훼손됐는데도 자성 없어

퇴임 후 서울을 처음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어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서 윤석열 정부를 공격했다. 그는 “파탄 난 남북 관계를 생각하면 착잡하기 짝이 없다”며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 “구시대적이고 대결적인 냉전 이념이 사회를 지배할 때 남북 관계가 파탄 나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경제 규모가 10위권으로 진입한 시기는 노무현·문재인 정부뿐이고, 지난해 우리 경제 규모는 세계 13위로 밀려났다”면서 현 정부의 경제 성과도 평가절하했다. “‘안보는 보수 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 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도 했다. 자성은 없이 시종일관 자화자찬이었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군사합의가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며 ‘최후의 안전핀’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당시 남북 정상회담에선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로 9·19 남북 군사합의가 체결됐었다. 남북 간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의 불가침 합의서”라고 의미를 부여했었다. 하지만 북한은 합의 위반 행위를 반복해 왔다. 2019년 11월 서해 창린도 일대 해상 완충구역에서 해안포를 사격한 데 이어 2020년 5월에는 중부전선 우리 측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했다. 지난해 말 서울 상공에 무인기를 투입하는 등 국방부가 집계한 합의 위반만 17차례나 된다.

더욱이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연이은 미사일 발사는 물론이고 전술핵무기 탑재가 가능하다며 탄도·순항미사일을 공개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 당시에는 우발적 충돌 방지가 중요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북한의 전술핵 사정권에 한반도 전역이 들어가는 상황이다. 최근 북·러 정상회담에 따라 기술 이전이 현실화할 가능성마저 있어 9·19 합의의 실효성이 불투명하다.

이런 점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무인정찰기를 투입한 지난 1월, 9·19 선언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김영호 신임 통일부 장관과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파기를 선언하는 데에는 위험요소가 따르는 만큼 북한에 합의 준수를 촉구하면서 조건부 효력 정지 가능성을 열어놓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낙관적 기대는 실패로 귀결됐다. 그동안 훼손된 동맹관계를 복원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과 자원이 투입되는 중이다. 이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전직 대통령이 야권 인사끼리 모인 행사에서 현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대안 마련에 정파를 초월해 힘을 보태도 모자랄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