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법과 규정을 잘 몰랐다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청문회에서 “송구하다” “죄송하다” 수십 차례

임명동의 표결 전에 국민 지지 얻을 방도 찾아야

“해외에 직장 가지고 있을 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안 되는 줄 저는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판사님이 법을 몰랐다는 말을 왜 그렇게 자주 하세요.”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아들이 미국 투자은행에서 일할 때 한국 건강보험에 자신의 피부양자로 등록하는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고의적 일탈은 아니었고, 규정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딸의 미국 계좌로 지난 5년간 6800만원을 송금하고도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은 것이 탈세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법 위반이 있다면 그 부분은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 10년 합산 5000만원 이상을 건네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 세법이 그렇게 돼 있고, 국민 대다수가 이걸 알고 따른다.

이 후보자는 약 10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 보유를 공직자 재산 등록 과정에서 누락시킨 것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 생긴 일”이라며 “죄송하다”고 했다. 고위 공직자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비상장 주식을 평가액으로 모두 등록해야 한다. 이 후보자는 독립 생계로 구분되지 않은 딸의 해외 예금액을 재산 등록 자료에 포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으로 답변했다. 이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3년 재판을 하면서 재판정에 선 사람이 ‘몰랐습니다’라고 하면 죄가 없다고 판결했느냐”고 물었다. 이 후보자는 “그런 적 없다. 어찌 됐든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어제와 그제 이틀에 걸친 청문회에서 그는 “송구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수십 번 반복했다.

사법의 책임자는 법과 도덕의 보루다. 본의 아니게 법을 어기게 됐다는 말은 보통 사람의 변명은 될 수 있을지언정 법을 다루는 공직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조 베어드 변호사는 불법 체류자를 보모로 고용해 사회보장세를 회피했다는 것이 드러나자(‘보모 게이트’) 청문회 전에 자진 사퇴했다. 미국 민주당은 “그 정도 잘못은 다들 하지 않느냐”고 엄호하다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국민은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무참히 훼손된 법원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재판 지연 등의 현안을 해결할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대법원장을 고대해 왔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자 지명 뒤부터 지금까지 드러난 이 후보자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 조만간 국회에서 그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그 전에 후보자가 다수 국민의 심정적 동의를 얻을 방법을 찾기 바란다. 사법부 정상화의 핵심은 국민 신뢰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