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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뒤집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 대표 “체포안 가결, 검찰 공작수사에 날개”

21일 이어 온 단식의 진정성도 스스로 허물어

불체포특권 포기를 공언(6월 19일)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석 달 만에 국민에 대한 약속을 뒤집었다. 오늘 국회 본회의의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두고서다. 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20일 넘게 벌인 단식의 진정성에도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이 대표는 어제 페이스북을 통해 “체포동의안 가결은 정치 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올가미가 잘못된 것이라면 피할 것이 아니라 부숴야 한다”고 했다. 체포동의안을 검찰의 올가미로 규정하고 민주당을 향해 부결을 요청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대표는 “백현동 배임죄는 자유경제 질서를 천명한 헌법에 반하고, 대북송금 뇌물죄는 소가 웃을 일”이라며 혐의도 부인했다. 그런데 이날 언론에 보도된 구속영장의 내용은 매우 엄중하고 구체적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을 통해 북한에 지급한 800만 달러는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군사비로 사용됐거나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국제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최고 무기징역 선고도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140여 쪽에 달하는 영장엔 “이화영 전 부지사가 이 대표에게 대북사업 관련 사안 17차례 보고” “경기도 공문 불법 유출해 수사에 대응” 등의 주요 증언도 자세히 제시됐다. 검찰은 이 대표와 측근·지지세력이 중요 참고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이 대표가 이를 정치 보복이자 검찰권 남용이라고 주장한다면 법원의 객관적 판단을 당당히 받아보는 게 온당한 처사다. 체포동의안 가결이 곧 구속은 아니기에 여야에 체포동의안 가결을 자청하고 법원 실질심사 과정에서 떳떳하게 소명하는 게 제1 야당 대표다운 행동이다. 불체포특권의 그늘에서 나오지 않겠다는 이 대표의 변심은 그래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 대표의 입장 표명을 전후해 친명계는 부결 총력전에 나섰다. “체포동의안을 단칼에 부결시키자”(서은숙 최고위원), “전쟁 중에 장수를 적군에게 갖다 바치는 어리석은 인간은 없을 것”(전용기 의원) 등 전의를 다지는 말이 잇따랐다. 민주당은 총력투쟁대회와 의원총회를 열어 총의를 모으는 작업에 나섰다. 강성 지지층 개딸들은 “가결표를 던진 의원을 끝까지 추적·색출해 정치 생명을 끊을 것”이라며 오늘 국회 포위 집결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개인범죄 의혹이 당을 방탄으로 몰아넣는 데 대한 비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표결을 놓고 계파 간 내홍이 심화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체포동의안에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으로 맞불을 놓는다. 제1 야당 대표 체포안과 국정 2인자의 해임건의안이 한날 표결 절차에 들어가는 것 역시 전례가 없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와 대결의 정치가 낳은 헌정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