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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러 우주기지에서 이뤄진 북·러의 위험한 거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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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푸틴, 군사협력 약속하며 세 과시

국제사회와 ‘잘못된 만남’ 이후 대비해야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제 회동했다. 최근 동방경제포럼(EEF)이 열린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이 회담 장소로 거론됐지만, 두 사람은 러시아 동부 스보보드니에 최신 설비를 갖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택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을 상징하는 우주 기지에서 만난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군사협력 의지를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우주기지다.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느냐는 현지 매체의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고, 북한의 ‘질주’를 말려야 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도자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우수 프로그램”이라고 하다니 어불성설이다. 크렘린궁은 “(양 정상이)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영역에서 협력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도 “러시아는 러시아에 반대하는 패권 세력에 맞서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나섰다.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전선에 함께하겠다”고 거들었다. 북한은 정상회담 직전 두 발의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쏘며 최고지도자와 군 수뇌부의 공백 상태에서도 한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다고 시위했다. 김 위원장은 귀환길에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함대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대놓고 선(線)을 넘으면서 잘못된 만남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포탄 지원이 절실하다. 러시아의 인공위성과 핵·미사일 관련 첨단기술은 옛 소련의 지원으로 6·25전쟁 준비를 마쳤던 북한에 2023년판 무기 현대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지 몰라도 우리에겐 재앙이 될 수 있다.

돈 그레이브스 미 상무부 부장관이 다음 주 한국을 찾아 대북 제재 등으로 맞서려 한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지금처럼 막무가내식으로 군사협력에 나설 경우 그 한계가 우려된다. 1921년 자유시 참변이 발생했던 스보보드니의 우주기지에서 이뤄진 ‘잘못된 만남’ ‘위험한 거래’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우선 러시아와 직접 외교적 소통으로 설득에 나서야 한다. 동시에 정부가 추구했던 한·미·일 협력을 통해 핵잠수함이나 위성 발사와 관련한 시설이나 장비의 이동을 해상 통제 등 물리적으로 막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 정보 능력을 확충해 관련 정보가 파악되는 즉시 국제사회에 알려 양국을 고립시키는 여론전·인지전을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층적이고 촘촘한 제재망을 구축하고 중국의 동참을 유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