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레퀴엠' 이렇게 다를 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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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오래 기다려온 만큼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준 무대였다. 25일 고음악 연주의 최고 거장이 마침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섰다.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와 아놀드 쇤베르크 합창단을 이끌고 온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주인공이다. 덕분에 안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음반 애호가들도 오랜만에 음악회 나들이를 했다.

평소 즐겨듣던 모차르트의 '레퀴엠'에 이런 부분이 있었나 싶어 귀를 의심했다. 포레의 '레퀴엠'처럼 부드러웠지만 멜랑콜리에 빠지지 않았다. 베르디의 '레퀴엠'처럼 드라마틱했지만 과장섞인 몸짓은 없었다. 한 편의 모차르트 오페라를 보는 듯했다. 라틴어 가사를 번역한 자막이 없어 아쉽긴 했지만 음악만 들어도 어떤 분위기인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아르농쿠르의 해석은 참신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단원들의 자율적인 앙상블 능력을 최대한 존중해주면서도 결정적인 부분에선 음악에 기(氣)와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는 마에스트로가 53년간 갈고 닦아온 소수 정예부대였다. 다이내믹(강약)의 극적인 대비, 명료하면서도 따스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합창단 48명, 오케스트라 36명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악구의 시작부분을 일치시켜 빚어낸 음악적 폭발력은 전율감마저 느끼게 했다. 음악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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