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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법원장 추천제 도입…“일할 동기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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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명수

김명수

지난 12년간 사법부는 극심한 내홍과 변화를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부(2011~2017년)는 상고법원 도입 등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지나치게 일사불란한’ 법원 조직을 만들었단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부(2017년~현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으나 ‘지나치게 느슨한’ 조직이 됐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때) ‘열중쉬어’에서 (김 대법원장 들어) ‘편히쉬어’가 된 상태”라고 비유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26일 취임사에서 “사법행정이 재판의 지원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법관 인사에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덜어내고 위계서열적 조직 구조를 해체하는 일에 몰두했다.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행정처 근무 판사 수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또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해 일선 법관들이 법원장 후보를 선택하게 했다. 법원장의 권한이던 사무 분담(판사들이 어떤 재판을 담당할지 정하는 절차)을 각 법원에 설치한 사무분담위원회의 몫으로 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강한 행정처’의 해체엔 ‘시스템의 부재’란 부작용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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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지연 현상도 심화했다. 한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인사 등을 통해 판사들에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줬고, 그 결과 재판 지연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모든 법조인이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느끼는 피해 감정은 법조인보다 더 클 것”이라고도 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또 다른 변호사는 “그동안 판사들은 개인생활을 희생하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그런 풍토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6년 전으로의 회귀’는 가능성과 적절성 모두 의문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한 판사는 “동기 부여를 위한 계기를 만드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면서도 “법원장 추천제 폐지 등 일련의 사법개혁 흐름을 과거로 한꺼번에 돌이키려는 시도는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고 했다.

지난 6년간 손대지 못한 상고심 적체 문제도 남아 있다. 한국처럼 1년에 사건을 3만 건 이상 보는 대법원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양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을 따로 만드는 과제를 추진했으나, 입법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그게 ‘사법농단’이었는지를 두고 4년 넘게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정작 상고제도 개선 논의에는 진전이 없다.

하급심을 강화해 상고심 사건 수를 줄이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판사 증원은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변호사 등 법조 경력을 갖춘 이들을 법관으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 제도 실행 이후 인력 수급 자체가 어려워졌단 문제도 있다.

한 변호사는 “법관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고 보수적이기 때문에 사법부에선 무엇을 추진하려 해도 반발이 있기 마련”이라며 “새 대법원장은 이들을 끌고 갈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균용 후보자는 자기 생각이 확고하고 주도적인 인물이어서 ‘사법부의 정상화’ 측면에서 본인이 직접 챙길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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