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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롱거리 전락” 개탄했던 보수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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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균용(61·사법연수원 16기·사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새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임명되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후 6년 만에 보수 대법원장 시대가 다시 열린다. 〈본지 8월 22일자 1면 보도〉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임자로 이 후보자를 지명했다. 김 대법원장 임기는 다음 달 24일까지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후보자를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 사법부를 이끌어나갈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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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 태생인 이 후보자는 부산중앙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1990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과 대전고법 법원장을 역임했다. 전·현직 법관과 학자들의 학술단체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이기도 하다. 법원 내에선 쉬운 글로 판결문을 쓰는 판사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에서 세 차례 대법관 후보로 천거됐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지난해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다.

이번 후보자 지명 과정에 관해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김명수 대법원’에서 3명(이균용·오석준·오영준)의 대법관 후보를 올렸을 당시 윤 대통령이 인사 검증 내용 등을 보고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 후보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대법관 추천만 4번…대통령 아껴놨던 ‘대법원장 카드’

그때부터 ‘대법원장 카드’로 쓰려고 미뤄뒀다는 취지다.

이 후보자는 할 말은 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2021년 대전고등법원장 취임사에서 ‘김명수 대법원’을 향해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등 재판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져내려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직격했다. 같은 부산 출신 김명수 대법원장과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 사이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 의견을 내고, 이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취업해 거액의 고문료를 받은 권순일 전 대법관 건과 관련해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다”고 비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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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자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 고전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을 필독서로 꼽을 만큼 이념적 정체성이 분명하다. 현 대법원의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내린 노동 사건 판결에 대해선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국민 정서나 국민의 의사를 내세워 어떤 편향된 주장을 실정법에 우선시하려는 위험한 여론몰이가 온 사회를 뒤흔들고 법원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사법 신뢰 회복 방안으로 ‘법의 지배 실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은 없지만, 법원장을 두 차례 지내 사법행정에도 밝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유능한 판사들이 격무와 자긍심 훼손으로 대거 사직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헌법에 법관 급여가 명시된 일본 사례를 들어 법관 처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게이오대에서 유학한 법원 내 ‘일본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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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인 이 후보자는 1990년대 초반 강릉지원에 근무하던 연수원 동기 문강배 변호사를 매개로,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해 당시 3년 차 검사로 강릉지청에 근무하던 윤 대통령과 친분을 쌓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검사장이 된 이후로는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 친한 친구와 (윤 대통령이) 친한 친구”라며 “(나도) 친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다수당인 야당 입장이 중요하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 후보자가 다른 후보자보다 더 적합한 인물인지,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이 영향을 미친 건 아닌지 국민 눈높이로 철저하게 검증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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