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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3시간’ 지옥 출퇴근, 삶이 구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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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출퇴근 전쟁

김포시 한강신도시에 사는 강희경(43)씨는 서울시 여의도 직장으로 매일 출퇴근한다. 편도 1시간20분 거리다. 오전 7시50분 집을 나서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서 경전철을 탄다. 혼잡률 285%의 ‘골병라인’이다. 초만원이 된 전철 안에서 강씨는 손풍기(손 선풍기)를 ‘강’에 맞추고 맺힌 땀을 식혔다. 김포공항역에서 환승한 서울 지하철 9호선 급행열차도 ‘지옥철’인 건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24일 동행한 출근길에서 강씨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면 좋겠지만, 골드라인·9호선에선 뭘 할 수가 없다. 살아서 가면 다행일 정도”라며 “출근 생각에 전날 밤부터 화가 나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시민들로 붐비는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강희경씨는 김포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며 매일 이런 극심한 혼잡을 뚫어야 한다. [연합뉴스]

시민들로 붐비는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강희경씨는 김포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며 매일 이런 극심한 혼잡을 뚫어야 한다. [연합뉴스]

매일 2329만 명이 회사로 출퇴근한다(2021년 국가지도집). 서울에선 10명 중 6명이, 경기도에선 4명 정도가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둘 다를 이용한다. 대부분 김포골드라인처럼 극심한 혼잡을 뚫고 가는 이들이다. 강씨처럼 1시간 넘게 이동해 회사에 이르는 사람만 356만 명에 달한다. 매일 아침 부산시 인구 전체보다 많은 수가 1시간이 넘는 ‘생존 역정’에 오르는 것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중앙일보는 ‘서울 생활이동 데이터’를 분석해 출근시간대 유입 인구가 많은 ‘출퇴근 1번지’(서울 여의도동·역삼동·종로동·가산동·명동·서초동)를 뽑아낸 뒤 해당 지역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12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모두 출퇴근 시간이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매우 영향을 미친다”가 10명, “영향을 미친다”가 2명이었다. 통근 때문에 포기한 것을 묻는 질문엔 여가나 운동, 아침 식사, 가족과의 시간, 아이들 식사의 질 등을 꼽았고, “업무 관련 공부를 하거나 자기계발을 하는 건 꿈도 못 꾼다”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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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인구 총조사(2020)에 따르면 전체 통근자 중 편도 30분 안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1128만 명에 불과하다. 걸어서 직장까지 가는, ‘직주근접’의 꿈을 실현한 건 10명 중 2명(서울 18.2%, 경기 14.1%, 인천 12.3%)이 채 안 된다. 그나마 서울에 살며 서울시로 출근하는 사람들 중에선 15.3%가 출근에 1시간 이상을 썼다.

한국 출퇴근 평균 58분, OECD 2배…걸어서 출근은 10명 중 둘도 안돼

지난달 24일 출근시간 지하철 9호선 열차와 열차를 잇는 연결통로 바닥에 한 여성이 지친 모습으로 쭈그려 앉아 있다. 심석용 기자

지난달 24일 출근시간 지하철 9호선 열차와 열차를 잇는 연결통로 바닥에 한 여성이 지친 모습으로 쭈그려 앉아 있다. 심석용 기자

하지만 경기도나 인천시 등에서 서울시로 출근하는 ‘광역 출퇴근’ 인원들은 약 39%, 10명 중 4명 정도가 1시간 이상 이동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도로망은 확충되고 지하철은 거미줄처럼 늘어나고 있지만 직장인들의 출퇴근 고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교통수단의 발달이 감당 가능한 출근 거리의 범위를 확장시키면서 직장과 집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통근자 수가 1720만 명(2000년)에서 2329만 명(2020년)이 되는 동안, 1시간 이상 통근자 비율도 14.5%에서 15.3%로 늘었다. 출퇴근의 고통이 점점 일상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통근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2019년 190조원,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과 2021년 역시 170조원 이상이라는 민간 연구단체(LAB2050)의 조사 결과도 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정인철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논문 ‘한국의 지역 차에 따른 통근시간과 주관적 웰빙의 연관성’(2023)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58분으로 OECD 국가들 평균의 두 배(26분)가 넘는다. 동시에 한국은 관련 연구의 조사 대상인 23개국 가운데 웰빙지수가 가장 낮고 우울증 유병률이 가장 높다.

지난해 4월 직장을 서울 강남에서 금천구 가산동으로 옮긴 이창원(44·서울 독산동)씨는 이직 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1시간 넘게 걸리던 출근시간이 20분으로 줄어든 뒤 스트레스도 줄고 체중도 10㎏ 이상 줄었다. 이씨는 “이직 기회가 왔을 때 ‘직주근접’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지금이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 교수는 “사람들이 직장생활이 아닌 개인적 삶을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직주근접에 대한 욕구도 커지고 있지만 각종 정책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좋은 직장을 갖게 되고 소득이 생겨도 출퇴근 거리가 멀면 막상 삶의 질은 떨어질 수 있다”며 “누구보다 바쁘고 또 열심히 사는데 행복하지 않다. 개인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주거와 직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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