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직업(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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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쯤 되면 정치인들도 무슨 생각이 있을 것이다. 요즘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의 국민의식조사에 나타난 정치인들의 점수는 말이 아니다. 낙제보다 더한 제적을 당해야 할 점수를 받았다.
성인국민의 70% 이상이 정치인은 「가장 부패한 계층」이고,「가장 싫은 직업」이라고 했다. 「70% 이상」이면 만장일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이처럼 가혹한 점수를 받은 이유는 새삼 물을 필요도 없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야말로 하루빨리 정치무대를 떠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마지막 봉사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정치인을 두 가지로 분류한 적이 있었다. 하나는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인」이고,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해 사는 정치인」이다. 말장난같지만 점잖은 학자가 생각없이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인」이란 한마디로 정치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다. 「몸을 던진다」는 말은 남을 위해 희생을 무릅쓰며 최선을 다하고,봉사한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이런 수준이 되면 정치하는 보람이 있다. 국민들도 아낌없이 점수를 줄 것이다.
「정치에 의해 사는 정치인」은 한마디로 정상배를 말한다. 정치에 얹혀서 무슨 이문이나 챙길까 하고 밤낮 두리번거리는 무리들. 이들은 「가장 부패한 계층」이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주변에서 별로 노력하지 않고도 그런 정치인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런 정치인일수록 빨리 정치무대에서 퇴장해야 할텐데,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이런 정치현실을 극복하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 때 표를 안 주면 된다. 민주정치는 국민이 정치인을 선택하는 제도다.
이제 우리는 줄줄이 치를 각종 선거들을 앞두고 있다. 지금의 정치인들만을 보며 한탄하기보다는 그런 사람을 밀어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앞서의 국민의식조사 중엔 민주화가 뜻대로 안 되었다는 지적도 상당히 있었다. 그것도 국민들이 하기에 달린 일이다. 선거를 의미없이 치르고 나서 아무리 한탄해도 그 허물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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