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딸에 '영원한 선물'…도서관 건립 50억 기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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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한다는 핑계로 둘째와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습니다. 어학연수를 떠난 지 석달 만에 교통사고를 당해 하늘나라로 갔지요. 아버지로서 딸 아이의 이름 석자라도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

중소 의류수출 업체인 ㈜현진어패럴 이상철(57) 사장이 담담하게 전하는 '서대문 구립 이진아 기념도서관' 설립 배경이다. 李씨는 사재 50억원을 털어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 옛 현저동사무소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정보도서관을 짓기로 하고 4일 서대문구청에서 기부금 전달식을 한다.

"아이 이름으로 도서관을 만들면 늘 아이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겠구나 생각해 (이름을 사용하고 싶다고) 욕심을 부렸죠. 의외로 서울시에서 흔쾌히 받아들여주었습니다. 마침 도서관 설립을 준비하던 서대문구와 인연이 닿았구요. "

외국어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진아(23)양은 지난 6월 미국 보스턴에서 어학연수 도중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동시통역사가 돼 아빠를 기쁘게 해주려던 재롱둥이 딸이었다.

"딸 아이가 죽고난 뒤 사진을 찾아보니 변변한 가족사진이 없더군요. 사고 2주 전 미국으로 출장갔다가 딸과 함께 뮤지컬 '라이언 킹'을 보고 사진을 찍었어요. 평소 사진도 잘 안찍던 딸이 그날은 웬일로 꼭 찍어야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니 결국 마지막 사진이 됐어요. "

이후 李씨는 딸을 영원히 곁에 둘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결국 기념도서관을 남기기로 했다.

"제가 자수성가해 그래도 이만큼 회사를 일궈냈습니다. 언젠가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진아 덕분에 그날이 조금 빨리 오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면 이곳에서 공부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보내고 싶습니다. "

내년 2월 착공해 9월 중순 완공될 이진아 기념도서관에는 지하 소형공연장과 시청각실을 비롯해 지상에 전자정보실.종합자료실.멀티미디어실 등이 들어선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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