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자살률 1위 국가 불명예, 경주마처럼 계속 달릴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만년 1등이라 슬픈 통계가 있으니, 자살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대한민국이 수년째 압도적 1위다. 더 무서운 건 이 통계에 익숙해져 가는 사회 분위기다.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남 죽는 문제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는 없다는 암묵적 공기가 한국을 잠식해가고 있다.

하늘 높이 치솟는 자살률, 바닥을 뚫고 내려간 출산율은 이제 뉴스 아닌 구문(舊聞). 외신에 관련 소식이 나오면 잠시 경각심을 가질 뿐이다. 그사이, 출근길 지하철 당신 곁에 서 있던 20대 여성도, 어젯밤 편의점에서 스친 80대 남성도 ‘고통 없이 죽는 법’을 검색한다.

미 항공 우주국(NASA)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광활한 우주. [AFP=연합뉴스]

미 항공 우주국(NASA)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광활한 우주. [AFP=연합뉴스]

자살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극단적 선택’ 말고도 ‘자유 죽음’이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자유롭게 택할 수 있는 죽음이라는 의미다. 철학자 장 아메리(1912~1978)가 쓴 『자유 죽음』이 대표적이다. 아메리는 자살을 권장하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 더 잘살기 위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느끼는 이가 택하는 자살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답이 있긴 할까. 『나는 자살 생존자입니다』의 황웃는돌 작가에게 물으니, 파랑새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정함을 조금이라도 느낀 사람은 삶에 매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죽음은 결심하는 게 아닌데도 죽기로 결심한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말이다. 조금만 더 벌면, 더 높이 올라가면 인생이 힘들지 않으리라는 감언은 삶의 동아줄이 되지 못한다. 인생이 왜 이리 힘든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다정한 희망이 우리 모두를 지탱한다.

지금 우린 성공과 돈, 권력이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믿으며 경주마처럼 돌진하고 있다. 이 경주만이 전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이 우리에게 씌운 경주마 눈가리개를 벗어보자. 지친 이웃에게 농담도 던져보고, 함께 땅에 핀 야생화도, 하늘의 예쁜 구름도 살펴보자.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속 은하계에서 지구는,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 넓은 세상에서 이렇게 함께 만난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이 글을 쓰면서도 2023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순수한 다정함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절감한다. 그래도 쓴다. 태어나기는 싫은데 죽고는 싶은 1위 대한민국에 익숙해지는 건 우리 모두의 직무유기이니까. 황 작가의 글을 빌려 마무리를 대신한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중략) 사람은, 삶은, 변하기도 하더라. 나를 살아가게 하는 거창한 사명은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