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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은 ‘국룰’을 깰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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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때가 있다. 1루를 향해 뛰기보다 야구 방망이를 던진 채 포물선을 그리는 공을 응시하는 득의양양한 모습. 지난 6일 국민의힘과 국토교통부의 당정협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보여준 모습이 그랬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인근에 김건희 여사 가족 땅이 있다는 논란이 커지자 원 장관이 전격적으로 백지화 카드를 던졌고, 여권 지지층은 일제히 환호했다. 마치 홈런을 기대한 관중처럼. 실제 감동한 여권 지지자는 원 장관에게 화환을 보냈다. 검찰총장 시절 원조 ‘화환남’ 윤석열 대통령, 장관 취임 100일 축하 꽃바구니 행렬을 마주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이어 원 장관도 ‘꽃을 받은 남자’가 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선언한 뒤 지난 11일 지지자에게 받은 응원 화환. [뉴스1]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선언한 뒤 지난 11일 지지자에게 받은 응원 화환. [뉴스1]

백지화 풀스윙 뒤 여권에선 원 장관을 ‘라이징 스타’로 여기는 분위기다. 여권 중진급 인사는 “원 장관이 홈런을 쳤다”고 했고,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은 “학력고사 전국수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대야 투쟁을 화끈하게 하는 한 장관에게 대리 만족을 느꼈던 보수층이 원 장관에게 감정을 투사했다”(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정치심리학적 분석도 나왔다. 모르면 몰라도 지난 대선 경선 때 민심에선 이기고 당심에서 대패한 홍준표 대구시장이나 보수층으로부터 “신중하다”는 지적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원 장관을 부러운 시선으로 볼지도 모른다. 여권 일각에선 “원 장관이 이번에 확실히 체급을 올렸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공이 끝까지 하늘을 갈랐을까. 지금까지 나온 객관적 데이터, 즉 여론조사 결과로는 홈런이 아닌 듯하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14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일주일 만에 6%포인트 급락했고, 17일 공개된 리얼미터 조사에선 2주 연속 하락했다. “홈런을 쳤다”고 말하던 중진급 인사가 말미에 “근데 그게 진짜 홈런일까”라고 말한 것처럼 현재까진 ‘파울 홈런’에 가깝다. 무차별 의혹을 제기하는 야권에 경종을 울리는 것까진 좋았으나 성급한 백지화 카드는 호사가에게 먹잇감을 줬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결과가 이렇다면 양평 문제 접근 전략은 전면 재검토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파울 홈런을 친 뒤 범타로 물러나는 건 야구의 국룰(국민룰), 즉 보편적 법칙이다. 불리한 볼카운트와 아쉬움을 떨치고 진짜 홈런을 치려면 강심장과 실력을 겸비해야 한다. 원 장관은 지난해 12월 화물연대 파업 때 강단 있게 나서 윤 대통령 지지율 반전의 일등공신이 됐다. 야권이 뭐라 하든 원 장관은 현재 여권의 핵심 주전이다. ‘꽃을 받은 남자’ 원 장관이 국룰을 깬다면, 여권의 4번 타자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