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원조 「홍당무」로 중 소 설득/유엔 결의안 통과 언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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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르비에 10억불 경제원조 약속/중국 안보리 참가는 기권 신호
지난달 29일 유엔안보리의 대 이라크 무력사용 결의안 채택은 위협과 보상약속 등이 동원된 미국의 대소·중 외교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대미 충고에 따른 타협으로 가능했다고 미 뉴욕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유엔안보리 결의안 추진에 관여한 미국 관리들의 말을 종합,부시 행정부가 이 결의안 통과를 위해 소련에는 무력사용 때 사전상의 약속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한 10억달러의 경제지원 다짐을,중국에는 천안문사태 후 악화된 미·중국관계 개선을 각각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당초 미국의 독자적인 무력사용을 선호했으나 국내 지지기반의 약화와 독자적 무력사용때 반이라크 연합의 이완,그리고 유엔의 결의안 채택이 잘못될 경우 대 이라크 전쟁이 불가피해지고 이는 부시 대통령의 92년 재선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10월부터 유엔결의안 추진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미국은 무력사용 결의안을 위해서는 소련의 지지가 핵심인 것으로 보고 대소 설득부터 착수했다. 소련은 미국측 입장을 이해하는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중동특사 프리마코프가 서로 경쟁적으로 고르바초프를 설득함으로써 소련의 대미 입장 지원에 기여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달 8일 모스크바에서 베이커 미 국무장관을 만나 『유엔이 무력사용 결의안을 채택하면 이라크가 철수하지 않는한 무력을 사용해야 된다. 미국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유엔 결의안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무력사용 결의원칙을 밝히되 이를 6주간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무력행사를 선언하는 두번째 결의안에 연계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유엔의 무력사용 결의안에 대한 미소의 견해차이는 지난달 19,20일 파리에서 가진 부시·고르바초프 회담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단일 결의안을 채택하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이루어지도록 유예기간을 주자고 수정 제의했고 부시 대통령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양국은 유예시한만을 제외한 나머지 결의안 문구에 거의 합의했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이 이 문제를 중국과 협의하고 이라크와도 한번더 논의할 때까지 합의를 공개치 않을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 미 소간 큰 견해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도됐었다.
이같은 논의과정에서 미국은 결의안 채택이 이라크의 철수를 결심토록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임을 설득하는 유예기간 후 미국이 무력사용을 결심하면 소련과 사전 상의할 것임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련이 올 겨울을 무사히 넘기도록 사우디아라비아가 10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토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한편 안보리 투표에서 기권함으로써 유엔의 대 이라크 무력사용 결의안 채택에 크게 협조한 중국에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 완화약속이 주효했다.
미국이 중국에 유엔결의안 협조를 요청한 것은 지난달 베이커 장관이 이집트에서 첸치천(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을 만났을 때였다.
베이커 장관은 전부장에게 미국의 페르시아만 대책에 중국이 지지를 보냄으로써 지난해 6월 천안문사태 후 적대적으로 돌아섰던 미국인들의 대 중국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중국이 유엔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치 않을 경우 그를 워싱턴에 초청하는 등 대 북경 완화조치를 취하겠다고 제의했다.
이때 전은 모호한 입장을 나타냈었다.
베이커 장관은 보름 후 파리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참석중 파리에서 북경의 전외교부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미국은 유엔의 결의안을 추구할 것이나 그렇지 않을 경우 독자적 무력행사에 나설 것이라고 통보했다.
전은 이때도 모호한 입장을 보였으나 베이커 장관이 예멘과 콜롬비아를 방문하고 있던 이틀후 베이커에게 전화를 걸어 뉴욕에서 열린 안보리에 참석할 계획임을 통보했다.
이는 중국이 최소한 거부권을 행사치 않겠다는 신호로 미국에 의해 해석되어 각료급 안보리 회의가 소집되었고 결국 대 이라크 무력사용 결의안 채택을 가능케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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