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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더 버는데 왜 가사일까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44호 20면

가부장 자본주의

가부장 자본주의

가부장 자본주의
폴린 그로장 지음
배세진 옮김
민음사

여성이 출산 후 경력 단절이나 소득 감소를 겪는다는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그렇다면 아이를 키우는 동성 커플의 경우는 어떨까. 노르웨이 데이터에 따르면, 육아를 하는 레즈비언 커플에서 아이를 낳은 생물학적 엄마는 처음 몇 년은 소득이 감소했지만, 5년이 지나면 더는 두 엄마 간 소득 차이는 없었다. 게이 커플의 경우 자녀로 인한 임금 불이익은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가 생긴 부부라면 둘 중 한쪽은 임금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란 통념과 달리, 오직 남녀 커플의 여성만이 현저한 임금 하락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다.

경제학자이자 스스로도 엄마인 저자는 이같은 세계 각국의 최신 데이터와 연구를 끌어모아 성별 간 경제적 불평등이 수백 년간 지속돼온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자 한다. 기존 담론들이 남녀 임금 격차를 생물학적 차이 등으로 설명하는 것과 달리, 저자는 문화적 요인에 집중한다. 예컨대 출산한 여성의 임금이 하락하는 건 단지 ‘여성만 자녀에게 수유할 수 있다’와 같은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은 집에 있어야 한다’와 같은 사회적 고정관념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기시감이 드는 접근법이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연구 사례와 통계들을 쫓아가다 보면, 한 사회에 퍼져있는 문화적 규범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깨닫게 된다. 가령 남편보다 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버는 경우 남편이 집안일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일 것 같지만, 도리어 여성이 가사노동 시간을 늘린다는 뜻밖의 통계가 제시된다. 여성들이 직업적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선 엄마로서의 전통적인 역할도 잘 해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해도 가사 분담이 이뤄지기는커녕 되레 이혼율 증가로 이어졌다는 스웨덴의 통계 등 각종 성 평등 정책의 실제 효과를 뜯어보는 부분도 흥미롭다. 저자는 남녀 격차를 존속시키는 지금의 가부장 자본주의는 “극소수 특권층 남성에게 유리한 시스템”이라며 남성들을 향해서도 이 체제를 해체하자고 손 내민다. 27년째 OECD 가입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한국사회가 새겨들을 대목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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