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의 내 고장 희망찾기 ⑭·끝 조치원 신안1리 강수돌 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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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변호사(左)와 강수돌 이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현직 교수인 강 이장은 마을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이장이 됐다. [희망제작소 제공]

충북 조치원읍 신안1리 산골마을의 강수돌(44) 이장. 그는 학부모 사이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다.

고려대 서창캠퍼스 교수이기도 한 그가 2003년에 내놓은 ''나부터' 교육혁명'이 새로운 자녀교육의 지침서로 이름을 떨친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교육학이 아닌 경영학과 교수다. 그는 책에서 배운 교육이 아닌, 몸으로 익힌 교육을 글로 풀었다. 그가 이장이 된 사연은 이렇다. 그는 신안1리에 1997년부터 귀틀집을 짓고 살고 있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는 그 집 앞에 곧 15층짜리 고층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아파트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그는 이장이 됐다.

이 마을에 15층짜리 아파트 건설이 추진된 것은 2003년부터다. 이를 위해 최고 5층(평균 4층 이하) 높이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는 1종 일반주거지역인 이 일대가 고층건물의 건설이 가능한 2종 주거지역으로 변경됐다. 주민 몰래 추진된 용도변경이었지만 결국 2005년 3월 말 2종 주거지역으로 결정, 고시됐다.

강 이장은 "그때부터 제가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당장 제가 손수 지은 이 집 앞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 경관이 훼손되고, 마구잡이 개발이 추진될 상황이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는 주민의 의견을 모아 군청에 반대 소견서와 민원을 제출했고 전국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마구잡이 개발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주민총회도 강 이장이 나서서 개최했다. 이를 통해 아파트 개발에 동의한다는 '신안1리 개발위원회' 회의 동의서가 엉터리로 작성된 것을 확인했다. 이에 군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허가 관청인 충남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또 가짜 동의서에 서명한 개발 찬성 주민들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아파트 개발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사이 지난해 5월 24일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90% 넘는 지지율로 그를 이장에 당선시켰다. 그는 이제 이장직이 더 편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느닷없기도 했지만 이장을 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장 되기 운동'을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장이 눈을 부릅뜨고 있으면 마구잡이 개발이 어려워지고 전국적인 개선운동 또한 각 지역 이장을 통해 탄탄해진다면 더욱 탄력을 받겠지요."

그러나 강 이장의 싸움은 현재 진행 중이다. 몇몇 개발 찬성 주민을 중심으로 한 소송은 무혐의 처리됐고 민사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충남도 측은 "허가를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건축허가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 건설업자, 행정당국과 싸우는 것이 너무 피곤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차례 합니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싸움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이미 이 일은 전국의 마구잡이 개발 사례로, 또 이에 맞서 싸우는 사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도록 결실을 거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계 경제체제를 말하고, 노동문제를 강의하며 책 속에서 대안 세상을 그리던 강수돌 교수는 이장이 되면서 구체적 현실과 부닥치고 직접 현실을 바꿔나가고 있다.

"진정한 개발은 고층빌딩을 짓거나 도로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를 발전시키고 교육이나 삶의 질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강수돌 이장의 모습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활짝 필 날이 멀지 않음을 발견한다.

<시리즈 순서>

① 지방의 미래를 얘기하다 (6.28)

② 광주 '푸른길 공원' (6.29)

③ '환경농업마을' 홍성 문당리 (7.4)

④ 전남 장성 '한마음 공동체' (7.12)

⑤ 진안군 '으뜸마을 가꾸기'(7.21)

⑥ 금강 지킴이 김재승씨 (8.2)

⑦ 아산시 거산초등학교 (8.11)

⑧ 김제 '남포문고' 설립 (8.22)

⑨ 전남 무안 '월선리 예술인촌' (9.1)

⑩ 서울 사당동 '양지공원' (9.8)

⑪ 금산 벤처농업대학 (9.15)

⑫ 주민 참여제 도입한 청주시 (9.21)

⑬ 섬 연구 24년째 '도서문화연구소'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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