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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땅에 산사태 방벽 세운 서초구, 배상될까?

중앙일보

입력

국가·지자체와 사유지 분쟁

국가·지자체와 사유지 분쟁

국가·지자체와 사유지 분쟁

2019년 돌아가신 어머니의 재산을 정리하던 박희만(가명)씨.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땅을 확인하던 중 이상한 걸 발견했다. 원래 아버지 박구수(가명)씨 땅이었고 어머니가 넘겨받은 줄 알았는데, 등기를 떼보니 소유자가 ‘서울특별시’로 돼 있던 것. 알아보니 서울시는 ‘1942년 12월 31일 박구수씨에게서 증여받았다’고 주장했고, 당시부터 이곳에 초등학교를 세워 사용하고 있었다. 64년엔 서울시가 소송을 통해 등기상 소유권까지 가져갔다.

그런데 알아볼수록 이상했다. 서울시가 토지를 증여받았다는 42년은 아버지 구수씨가 16세였을 때다. 또 서울시가 제기한 소유권 관련 1심 소송 선고가 65년 11월에 내려졌는데, 박구수씨는 그로부터 6개월 전에 사망했다. 서울시는 ‘증여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명확한 자료도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희만씨는 ‘추완항소’를 냈다. 불가피한 사유로 항소 시기를 놓쳤다고 주장하며 항소하는 것인데, 법원이 받아들였다.

희만씨 사건의 배경에는 50년대 농지개혁이 있다. 정부는 당시 가구마다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면적만큼의 토지만 소유하게 하고, 나머지는 사들인 뒤 다른 농민에게 사용료를 받고 농사를 짓게 했다. 다른 농민에게 배분되지 않은 땅은 원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줘야 했다. 구수씨의 땅은 배분되지 않고 초등학교 부지로 계속 쓰였는데, 그럼 구수씨에게 반환해야 했다. 그러나 반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었다.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이 땅은 박구수씨 땅이 맞다’며 희만씨의 손을 들어줬다. 구수씨가 땅을 서울시에 증여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를 서울시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42년 토지대장, 50년 농지분배 당시 피보상자 목록에도 토지주가 ‘박구수’라고 적혀 있었다. 다만 대법원은 ‘초등학교가 구수씨의 땅을 사용해 온 게 무단점유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서울시는 20년 이상 ‘평온하게’ 토지를 점유해 민법에 따라 소유권을 주장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짓고, 도로를 내는 등 나라가 하는 여러 사업에 사유지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사업을 진행할 곳이 개인 소유 땅이라면 당연히 땅 주인의 허락을 받고 정당한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토지 소유주도 모르는 사이에 정부 사업이 그 땅 위에서 진행되는 경우라면? 이 경우 국가와의 분쟁이 벌어진다.

윤대호(가명)씨의 서울 서초구 염곡동 토지(406평)도 그런 사례다. 대호씨는 2015년 문득 땅을 확인했다가 토지 중 일부(163평)에 누군가 나무를 심고 석재 구조물을 가져다 놓은 걸 발견했다. 우면산 산사태가 나자 서초구가 2012년부터 진행한 사방사업(흙막이사업)이었다. 대호씨로선 황당할뿐. 사방사업법엔 ‘사방사업 시행을 누구든지 거부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어 대호씨가 거부할 순 없다. 다만 법은 동시에 ‘사방지를 지정했을 때에는 지체 없이 토지 소유자에게 통지해야 한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호씨는 공문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서초구는 사방사업 알림 공문을 보내긴 했는데, 대호씨가 69년 땅을 살 때 토지 등기부등본에 있는 잘못된 주소로 보낸 것이었다. 대호씨는 서초구가 땅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토지 사용에 따른 부당이득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 2심 재판부는 사방사업법을 들어 대호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서초구가 대호씨 땅을 사방지로 지정하고 고지한 절차가 불충분하다고 보고,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40년 전 등기에 적힌 주소지에 딱 한 차례 공문을 보내고선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 않았다는 것.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아갔는데, 사방사업 고지 절차의 정당성을 다시 따져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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