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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프리즘] 사형제도, 법 따로 현실 따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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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30면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형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의 하나다. 극형으로 불리는 중한 형벌이지만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해 사형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서고금의 입법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그런데 최근 사형을 법적으로 폐지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법률상 사형이 유지되고 있는데도 실무 관행으로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음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제도적으로 이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법률 규정과 실무 관행의 불일치는 사형제의 존치를 원하는 다수 국민의 요구와 사형 집행에 부담을 느끼는 정부의 입장이 비정상적인 균형을 이룬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떤 의미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입법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하거나 실무 관행을 바꿔서 양자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점에 대해 대다수 법률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최근 한 사형수가 1993년 11월 사형 판결 확정 이후 30년의 형 집행 시효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를 계기로 사형을 무기한 집행하지 않는 것이 맞는지를 두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사형 판결 후 30년 집행 시효 논란
국회,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법률에 근거 없이 사형 집행을 무기한 미루는 것이 정당한가. 둘째, 만일 30년의 형 집행 시효가 완성된다면 그 사형수를 계속 구금할 수 있는가. 그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셋째,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법률 개정이 필요한가. 아니면 실무 관행의 개선만으로 충분한가.

법무부는 사형수 구금과 동시에 형 집행을 개시한 것이므로 형 집행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 사형 집행을 위해 구금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구금은 사형 집행을 위한 준비일 수는 있어도 구금 자체를 사형 집행의 개시로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집행을 개시한 지 30년이 되도록 집행이 끝나지 않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누가 납득하겠는가.

이런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률 규정과 실무 관행의 불일치 해소를 위한 입법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방법은 다양하다. 예컨대 사형제도를 입법적으로 폐지하고 기존 사형수들의 형을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하면 실무 관행을 굳이 바꾸지 않더라도 법률 규정과의 충돌 문제를 피할 수 있다. 다만 몇 달 앞으로 다가온 30년 형 집행시효의 완성 전에 법이 개정되고 시행돼야 한다.

또 다른 대안으로 사형제도를 존치하면서 사형의 형 집행시효를 폐지하는 방법이 있다. 최근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시효 완성 전에 형 집행시효가 폐지된다면, 시효 완성으로 사형수를 석방해야 하는 당장의 문제는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법무부가 사형을 계속 집행하지 않으면서 형 집행시효만 폐지하는 것은 현행법에 없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임의로 만들어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결국 사형제도의 존폐 문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형제도 존폐론은 사형제도 위헌론과는 구별해야 한다. 현행 헌법 제110조 제4항이 ‘사형’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형제도 자체를 위헌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헌법이 사형제도의 입법적 폐지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입법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할지가 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된다.

이를 모르지 않으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형제도 위헌소송만 반복됐던 것은 정치권에서 찬반 대립이 날카로운 사형제도 존폐 문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 공감대를 모아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규범과 현실을 일치시켜야 비로소 올바른 법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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