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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가리려다 강도짓까지 가렸다…'편의점 시트지' 뜯어낸다

중앙일보

입력

편의점 안의 각종 담배 광고를 가리기 위해 유리 벽에 붙이는 반투명 시트지가 도입 약 2년 만에 사라질 전망이다. 근무자 안전을 위협한다는 업계 반발이 지속하고 있고, 규제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일각에선 이 기회에 편의점 담배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편의점 시트지 사라지고 금연광고 부착 

지난 3월 서울의 한 편의점에 편의점 내부의 담배 광고가 외부로 보이지 않도록 부착한 시트지. 연합뉴스

지난 3월 서울의 한 편의점에 편의점 내부의 담배 광고가 외부로 보이지 않도록 부착한 시트지. 연합뉴스

14일 국무조정실·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조실 규제심판부는 정부와 한국편의점산업협회 등 편의점 업계 측이 최근 합의한 내용을 담은 규제개선 권고안을 이르면 이번 주쯤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9일 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편의점 업계는 반투명 시트지를 편의점 유리 벽에서 떼는 대신 눈에 잘 띄는 1개 면에 금연 광고 포스터를 붙이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상품 광고 등을 유리 면에 추가로 붙이거나 내부 담배광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끄는 방법도 담배 내부 광고 노출을 줄일 대안으로 함께 제시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종안은 국조실에서 확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조실 규제심판부는 관계자 최종 협의를 거친 뒤 확정된 규제개선안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국조실은 지난달 17일 ‘편의점 등 소매점 담배광고 규제 합리화 방안’을 규제심판제도에 상정하고, 정부 당국과 업계 이견을 조율해왔다. 규제심판제도는 규제개선 과제를 정부가 온·오프라인 창구를 통해 접수·발굴하고, 중립적인 규제심판부가 심의해 개선을 권고하는 제도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범죄 발생 가능성 증가 ▶근무자 정신적 피로 해소 등을 이유로 정부에 규제 개선을 지난해 10월 건의했다.

반투명 시트지로 가려도 LED등이나 형광등을 켜면 담배 광고가 밖에서 보인다. 사진 채혜선 기자.

반투명 시트지로 가려도 LED등이나 형광등을 켜면 담배 광고가 밖에서 보인다. 사진 채혜선 기자.

안전 논란에 업계 반발…“내부광고도 규제” 

제9조의4(담배에 관한 광고의 금지 또는 제한)

① 담배에 관한 광고는 다음 각 호의 방법에 한하여 할 수 있다.
1. 지정소매인의 영업소 내부에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광고물을 전시(展示) 또는 부착하는 행위. 다만, 영업소 외부에 그 광고내용이 보이게 전시 또는 부착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반투명 시트지의 시작점은 국민건강증진법이다. 해당 법 9조4항에서는 청소년 흡연 방지 등을 위해 편의점과 같은 담배영업소 내부의 담배광고 내용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실상 사문화됐던 해당 규정은 감사원이 2019년 복지부 측에 단속 등 법 집행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다시 이슈가 됐다. 복지부가 2021년 7월 단속을 예고하자 그 과정에서 한국담배협회·한국편의점산업협회와 같은 관련 업계가 편의점 내부광고 효과에 지장을 안 줄 자구책으로 시트지 부착을 자율규제안으로 꺼냈다.

하지만 반투명 시트지가 편의점 내부를 가리면서 근무자 안전성 논란으로 불똥이 튀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편의점 내 범죄 발생 건수는 2019년 1만4355건, 2020년 1만4697건, 2021년 1만5489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업계는 이런 게 시트지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시트지 탓에 외부에서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워 편의점이 범죄 표적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관계자는 “시트지 부착과 범죄 발생의 상관관계가 입증된 건 아니지만, 인명이 희생된 만큼 안전 확보 차원에서라도 시트지를 떼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2월 인천에서 한 편의점 점주가 강도를 당한 뒤 50분 만에 숨진 채 발견되면서 반투명 시트지를 제거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율은 2021년 4.4%, 2022년 4.5% 등 시트지 부착 전후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어 규제 실효성 논란도 일었다. 10년 넘게 경기도 수원에서 편의점을 운영했다는 A씨는 “안을 시트지로 가려도 LED 등과 형광등을 켜면 어차피 밖에서 훤히 광고가 보이기 때문에 땜질식 처방에 불과했다”라고 지적했다.

편의점 내 담배진열 모습. LED등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편의점 내 담배진열 모습. LED등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이번 규제 개혁을 놓고 업계 안팎에서는 담배광고를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17~23일 진행된 국조실 온라인 토론 댓글 창에는 “금연 효과성을 생각한다면 시트지 부착 전 담배광고 금지가 먼저다” “청소년들이 편의점에 들어오기만 해도 담배가 보이는 게 문제”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복지부도 국민 건강을 위해 중장기적으로는 담배광고나 진열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전 세계 111개국에서 편의점 같은 소매점의 담배 내부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에서는 영국·이탈리아·프랑스 등 21개국(55%)이 소매점 담배광고를 못 하게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8일 ‘담배광고의 외부 노출 규제 현황 및 개선 방향’이라는 현안분석 보고서를 통해 “정작 문제는 영업소 내부에서 담배 광고와 진열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종국적으로 영업소의 담배 광고·진열에 대해 포괄 규제하는 입법 방향이 바람직하다”라는 의견을 냈다. 익명을 요구한 관련 부처 관계자도 “소매점 내부 담배광고가 허용되는 게 문제”라며 “시트지 부착은 본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찾은 수원 장안구 한 중학교 정문 170m(도보 2분 거리) 인근 편의점에는 ‘시원 하이 톡톡 하이’ ‘만족감도 나답게’ 등과 같은 문구가 적힌 담배광고물 10개와 LED 등 6개가 계산대 인근에 붙어있었다. 40대 학부모 이모씨는 “번쩍이는 담배광고가 너무 많고 아이들이 매일 본다고 생각하니 불쾌하다”라고 말했다. 8일 발표된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명승권 대학원장의 메타분석 논문에 따르면 청소년·20~30대 청년 등 대상자 2만5722명을 분석한 결과 편의점과 같은 소매점에서 전자담배 광고에 노출된 이들의 전자담배 흡연율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담배 내부광고가 어떻게 외부로 보이지 않게 할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부광고를 과연 해도 되는지를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담배광고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피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새로운 흡연자를 계속 만들어낸다”라며 “그런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가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통해 모든 담배광고·판촉·후원에 대한 포괄적인 금지조치를 하고 있다. 한국도 협약 당사국으로서 국제적 수준에 맞춰 담배광고를 금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연 정책이란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게 목적으로서 금연이 세계적인 추세인 만큼 정책을 강력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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