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대학」을 바로 잡아야 한다/이명현(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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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또 뜨거운 입시전쟁의 계절이 다가왔다. 들어갈 문은 좁은데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벌어지는 전쟁이요,거기다가 저마다 이른바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자해 벌어지는 뜨거운 경쟁이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제 실력에 상응하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오늘의 입시제도가 지닌 불확실성 때문에 겪는 불안이 대학문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대입병은 한국이 “중증”
이와 같은 뜨거운 입시경쟁은 한국만의 사정은 물론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 경쟁이 있게 마련이고,그래서 교육을 받고자하는 열의가 있는 곳에서는 응당 입시경쟁이란 없을 수가 없다.
문제는 과열이요,그로인해 빚어지는 온갖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교란이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을 포함하는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이 겪는 입시전쟁은 대단한 것이며,그 가운데도 한국은 그 열도에 있어서 단연 세계의 정상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과열을 조절하는 여러가지 사회의 제도적 장치요,교육열 자체의 해소나 냉각이 아니다. 교육열은 개인적 관점에서 볼 때나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모두 매우 긍정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나 우리와 같이 사회발전의 중요 동인으로 인적자원 밖에 없는 나라에 있어서 교육열은 우리가 부양해야 할 보배요,결코 제거해야 할 그 어떤 장애물이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고등교육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었음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오늘날 고등교육이 대중화에 이르게된 것은 과학기술에 의한 산업화와 과거 밑바닥에 놓여있던 민중들이 역사의 무대위로 등장하는 민주화라는 역사의 두 추동력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땅의 교육상황은 이땅의 산업화와 민주화로부터 따로 떼어서는 제대로 파악될 수 없다. 그리고 이땅의 교육적 과열에 대한 처방도 결코 단순한 교육학적 처방에 그쳐서는 제대로 효험을 볼 수 없다. 총체적인 사회적 처방에 의해서만 그 해결에 기대를 걸 수 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의 기본구조와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교육은 새로운 사회의 설계다.
오늘 이땅의 눈들은 온통 대학문 앞에만 집중되어 있지만 그 문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거의 눈을 감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것은 대학문안에서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21세기를 주도하는 한국」을 꿈꾸며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체적」인 문화,「자주적」인 나라를 말한다.
모두가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아랫자리의 삶을 벗어난 차원 높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우리가 지향하자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그것을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 표현하든 종속으로부터 호혜평등에로의 전환이라 표현하든 우리도 이제는 버젓이 자기의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보자는 데는 매한가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차원 높은 삶은 그냥 원한다고 해서 그리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 곧 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희망사항을 현실로 바꾸려면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요구되며,또한 그 지식과 지혜를 인간의 희망에 맞추어 실천하는 인간의 활동이 요청된다.
○새 지식·지혜 창출 뒷전
대학은 본질적으로 지식과 지혜 창출의 본원지이며 창출된 지식과 지혜를 신세대에게 배분하는 보급창이다. 오늘 한국대학은 이와 같은 제대로 된 대학의 본질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면 우리의 대학은 반대학이다.
새로운 지식과 지혜의 본원지는 우리의 대학 모습이 아니다. 오직 신세대에게 지식과 지혜를 배분하는 보급창의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이땅의 대학 현주소다.
새로운 지식과 지혜의 창출은 외국에 의존한 채 학문수입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 오늘 이땅의 대학사정이라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사회발전 동력의 원천인 새로운 지식과 지혜가 전적으로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아래서 한 사회가 제발로 서서 제힘으로 움직여가는 일이 과연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매우 어렵다 못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나라의 학문이 세계수준에 올라서는 일은 무슨 무슨 세계경기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는 일처럼 몇년 동안의 노력에 의해 성취될 성질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인류의 역사책을 조금만이라도 읽은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니 40여년의 역사 밖에 안된 우리 대학을 반쪽대학이라고 나무랄 수만은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초·중등학교와 다름없는 「단순한 학교」에만 머무른 채,새로운 학문이론의 창출은 속수무책인 채 수입이론에만 의존하는 이땅의 대학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단순한 학교」 벗어나야
그래가지고서는 「자주」「주체」「21세기주도」…이 모든 언어는 하나의 희망사항을 표현하는 시어에 머물고 말 것이다.
오늘 이 땅의 대학을 사회 추동력의 시원지로 살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가지 방향의 변혁이 일어나야 한다.
그 하나는 사회와 정부로부터 대학을 보는 시각의 근본적 전환과 함께 지원체제의 일대 변혁산업이요,그 다른 하나는 차원 높은 대학으로의 발전을 차단하는 현재의 대학조직을 뜯어 고치는 일이다.
그 하나의 예를 말하면 학부학생부터 하나의 전공 울타리안에 가두어 두는 오늘의 한국의 왜소한 대학 울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학문수입업자가 아니면 박사가 아닌 협사요,본을 가지고 씨름하는 학문의 거인이 아닌 말을 가지고 만지작거리는 군소전문업자일 뿐이다.<서울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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