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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1만4000쌍의 은인’ 조문 줄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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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경남 창원에서 신신예식장을 운영하며 55년간 무료 예식 봉사를 해 온 고인은 원래 길거리 사진사 출신이었다. [연합뉴스]

경남 창원에서 신신예식장을 운영하며 55년간 무료 예식 봉사를 해 온 고인은 원래 길거리 사진사 출신이었다. [연합뉴스]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창원시 마산의료원 장례식장 202호엔 30일에도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인은 ‘무료 예식봉사’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힘찬 출발을 도운 인물이다. 지난해 4월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55년간 1만4000쌍의 인연을 맺어줬다. 고인은 투병 끝에 93세로 28일 별세했다.

3일장 동안 신신예식장에서 무료 예식을 치른 부부 또는 그 가족들이 빈소를 많이 찾았다. 이들은 상주에게 “선생님께서 해주신 주례 말씀대로 하니 잘 살고 있다” “지금 행복하게 잘 산다”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과 일면식도 없다’는 시민들도 “(부고) 뉴스를 보고 달려왔다”며 향을 피웠다.

고인의 아들 남문(54)씨는 “많은 분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아버지 선행, 잊히지 않았구나”라고 말했다.

고(故)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의 빈소. 안대훈 기자

고(故)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의 빈소. 안대훈 기자

고인은 1967년 6월 1일 신신예식장 문을 열었다. 마산합포구 서성동 철근 콘크리트 2층짜리 건물(현 3층)를 당시 142만원에 매입하면서다. 예식장 운영 전엔 사진사였다. 바로 옆 목조 슬레이트 건물에서 23.1㎡(7평)짜리 ‘신신사진관’을 운영해왔다.

고인은 처음엔 ‘길거리 사진사’로 일했다. 1962년의 일이다. 그에겐 ‘하루 200원 저축’이란 목표가 있었다. 자신만의 가게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시절 사진 1장 가격이 20원이었다. 비가 오는 날엔 산에 가 나무를 하거나 비닐우산을 팔아 200원을 채웠다고 한다.

지난해 8월 고인의 부인 최필순 여사가 신신예식장에서 무료 결혼식을 위한 신부 드레스를 고르고 있다. 안대훈 기자

지난해 8월 고인의 부인 최필순 여사가 신신예식장에서 무료 결혼식을 위한 신부 드레스를 고르고 있다. 안대훈 기자

고인이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예식장을 차린 이유는 ‘자기처럼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였다. 31살 늦깎이 장가를 든 그는 정한수 한 그릇만 올려놓고 혼례를 치렀다고 한다. 작은 단칸방에 부모와 형님 부부, 조카 9명 포함해 13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 정도로, 당시 그의 처지가 곤궁했다.

이런 경험 탓에 고인은 무료 예식봉사를 할 땐 주례, 신랑·신부 메이크업, 예식장·턱시도·드레스·신발 대여 등 예식 비용을 받지 않았다. 대신 사진값만 당시 기준 6000원을 받았다. 이 비용이 세월이 흘러 20만원, 40만원, 현재 70만원으로 이어졌다. 식비 제외하고도 1000만원 정도 예식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무료’나 마찬가지다. 이마저도 2019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뒤에는 사진값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신신예식장 사훈(舍訓)은 ‘고객 존경·고객 만족·고객 감동’이다. 사자를 모일 사(社) 아닌 집 사(舍)를 쓴다. 고인에게 신신예식장의 ‘무료 예식’은 ‘회사 운영’ 아닌 ‘집안일’이었던 셈이다. 지난해 4월 고인이 병상에 누운 이후부터 아내와 아들이 그의 ‘집안일’을 잇고 있다. 주례는 고인과 수십 년 지인인 백태기 전 창원여자중학교 교장이 맡고 있다. 남문씨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앞으로도 계속 (무료 결혼을) 해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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