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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폭발적 가창력…그래미상 12번 탄 록의 여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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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로큰롤의 여왕’ 티나 터너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스위스 자택 서 별세했다. [EPA=연합뉴스]

‘로큰롤의 여왕’ 티나 터너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스위스 자택 서 별세했다. [EPA=연합뉴스]

‘로큰롤의 여왕’으로 불린 미국 출신 스위스 팝스타 티나 터너가 별세했다. 83세.

외신에 따르면, 티나 터너가 오랜 투병 끝에 스위스 취리히 인근 퀴스나흐트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24일(현지시각) 터너의 대리인이 발표했다. 그는 40년 가까이 활동하며 소울, R&B,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폭발적 가창력이 빛났던 그는 무대에서도 여왕으로 군림했다.

1939년 미국 테네시주 브라운스빌에서 태어난 티나 터너의 본명은 애나 메이 불럭이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싱어송라이터인 아이크 터너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눈에 띄어 객원가수로 발탁됐다. 두 사람은 1960년 ‘아이크 앤드 티나 터너’라는 듀오를 만들어 활동했고, ‘어 풀 인 러브’ 등을 히트시켰다. 두 사람은 1962년 결혼했는데, 훗날 티나 터너가 펴낸 회고록에 따르면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그는 결혼 14년 만인 1976년 남편으로부터 도망쳤고, 결국 이혼했다.

40대에 솔로가수로 재기에 나선 티나 터너는 1984년 앨범 ‘프라이빗 댄서’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그의 대표곡 ‘왓츠 러브 갓 투 두 위드 잇’으로 1985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레코드’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 앨범의 또 다른 수록곡 ‘베터 비 굳 투 미’로는 최우수 여성 록 보컬 퍼포먼스상을 받았다.

티나 터너는 ‘아이크 앤드 티나 터너’ 시절을 포함해 통산 25차례 그래미 후보에 올라 12차례 수상했다. 또 1991년에는 아이크 터너와 함께, 2001년에는 솔로가수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05년에는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2018년에는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된 음반만 1억5000만장이 넘는다.

무엇보다 무대에서 빛났다. 1988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공연에는 18만명의 관객이 몰려 당시 솔로가수 최다 유료관객 신기록을 세웠다. 60세였던 1999년 ‘트웬티 포 세븐’ 앨범을 발표한 티나 터너는 이듬해인 월드투어에서 1억달러 넘는 티켓 판매고를 기록해 솔로가수 역대 최고 수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티나 터너는 1985년 16살 연하인 독일 EMI레코드 임원 에르빈 바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88년 영국 런던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고, 2013년 바흐와 결혼했다. 2018년에는 남편 바흐와 함께 자신의 인생 역정을 그린 주크박스 뮤지컬을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별세 소식에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냈던 티나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믹 재거), “너무도 슬픈 날”(브라이언 애덤스) 등 동료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소식”이라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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