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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화재 환수에 좋은 선례된 겸재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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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독일에 있던 겸재 정선의 그림 21점이 지난해 10월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온통 짜증나는 뉴스로 국민 모두 화가 나 있는 요즘 모처럼 듣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 그림은 겸재의 진경산수는 물론 그의 다양한 화풍을 망라한 국보급 문화재라니 더욱 의의가 크다.

우선 이 그림을 되찾아 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왜관 베네딕도회 수도원 선지훈 신부의 노고를 치하한다. 이 그림을 소장해 오던 독일 수도원에서 7년간 수행한 그는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압박해 가며 그림의 반환을 성사시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처럼 나라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선 신부 같은 분이 진짜 애국자다.

잘 보관하라는 말 이외에 별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이를 한국에 돌려준 독일 수도원에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경매 업체가 거액을 제시하며 팔 것을 종용했지만 "한국 반환이 최고의 가치"라며 거부한 독일 수도원의 결정은 종교적 모범을 실천한 것이다.

이번 겸재 화첩의 반환은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에 좋은 선례가 된다. 최근 일본 후지쓰카 부자의 추사 유품 기증이나 도쿄대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책 반환,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 환수 등은 모두 민간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국가 간 협상에 의해 문화재가 반환된 사례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민간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이번에도 다시 한번 입증됐다.

이번 반환은 특히 답보 상태에 있는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도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간 협상으로 반환 받기 어려워진 만큼 민간의 노력을 정부가 지원하는 쪽으로 전략을 짜기 바란다. 영구임대 형식이긴 하지만 실질적 반환이나 마찬가지인 이번 사례를 참고하면 방법이 없지 않을 것이다.

환수 문화재의 보존에도 신경써야 할 시점이다. 일본에서 돌려받은 오대산 사고본은 불교계와 서울대 사이에서 아직 보관 주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겸재 그림도 지방의 한 대학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환수 문화재의 보관과 관리는 문화재청이 적극 나서는 게 옳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