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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2만원만…” 전세사기 당한 20대 아들의 마지막 전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미안해요 엄마’하면서 2만원만 보내달라더라고요….”

16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장례식장.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여성은 이틀 전 세상을 뜬 외아들과의 마지막 통화를 되뇌었다. 아들 임모(26)씨는 지난 14일 인천 미추홀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닷새 전인 9일 임씨는 수술을 앞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는 전화를 끊기 직전 “2만원만 보내달라”는 말을 꺼냈다. ‘20만원도 아니고 2만원이라니.’ 어머니는 의아했지만 더 묻지 못하고 아들에게 10만원을 보냈다. 그는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린 남모(61)씨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였다.

고교 때부터 인천 남동공단 내 식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임씨는 2019년 8월 새로 지은 연립주택을 전세 6800만원에 계약해 살다 2년 후 9000만원으로 전세 재계약을 했다. 하지만 1년 뒤 집이 임의경매에 넘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임대인은 연락도 받지 않았다. 계약을 중개한 부동산업자는 “염려하지 말라”며 그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임씨는 한참 뒤에야 자신이 ‘건축왕’으로 불린 남씨가 중심이 된 조직적 전세사기 범죄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택이 낙찰돼도 임씨가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3400만원뿐이었다. 올해 6월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둔 그는 전세금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퇴직금을 받아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7년간 일한 직장도 그만뒀다. 대신 지인 소개로 서울의 한 보험회사에 들어갔지만 벌이는 넉넉지 않았다. 지난 2월 차량 접촉사고까지 내면서 상황은 더 힘들어졌다. 임씨 지인은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망 당시 그의 지갑에는 현금 2000원뿐이었다.

정부는 악성 임대인 신상공개,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 비대칭성 해소를 위한 안심전세앱 활용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선 큰 도움이 안 된다는 하소연이 많다. 지난 2월 28일에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보증금 7000만원을 받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피해자는 “(전세 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 저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유서에 적었다. 피해자들은 “수사 중인 집들의 경매 중지와 피해자들의 우선 매수권 보장이 먼저”라고 말한다. 미추홀구전세사기 피해대책위에서 활동 중인 최은선씨는 “낙찰돼 쫓겨나면 방도가 없고 정부 대책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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