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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콩깍지가 ‘쓰인’ 사람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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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어떤 사람의 단점이 보이지 않고 장점만 보인다면? 또 그 사람의 생김새와 몸짓 등이 모두 사랑스럽게만 느껴진다면? 이럴 때 흔히 쓰는 관용적 표현이 있다. 바로 ‘눈에 콩깍지가 씌다’이다. 그런데 이 표현은 자칫 틀리기 십상이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보니 콩깍지가 단단히 쓰인 모양이다” “콩깍지가 씌운 상태에서는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등과 같이 쓰곤 한다. 이는 ‘쓰이다’와 ‘씌우다’를 활용해 쓴 것으로,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씌다’는 ‘쓰이다’나 ‘씌우다’의 준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준말이 아닌 하나의 자동사다. 따라서 그 자체로 ‘씐/씌고/씌니/씌면/씌어서’처럼 활용해 사용해야 한다.

‘씌우다’는 ‘쓰다’의 사동사이므로 누가 내 눈에 콩깍지를 씌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누군가 내 눈에 씌우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그것에 덮여 가려지는 것이므로 ‘콩깍지를 씌우다’는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씌우다’를 활용한 ‘씌웠다’ ‘씌운’ 등도 이 경우 쓸 수 없는 표현이 된다.

‘씌다’를 과거형으로 나타낼 때도 ‘씌였다’와 같이 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씌였다’를 분석해 보면 ‘씌+이+었+다’로, 불필요한 ‘-이-’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빼고 ‘씌었다’고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콩깍지가 씌인 모양이다”처럼 ‘씌인’이라고 쓰기도 하나 이 역시 불필요하게 ‘-이-’를 집어넣은 것이므로 ‘씐’이라고 고쳐야 바른 표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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