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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절용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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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흔히 ‘마디 절’이라고 훈독하는 한자 ‘節’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 글자이다. 마디는 앞과 뒤가 구분되는 분기점이고, 마디가 있다는 것은 곧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예절, 절기, 절도(節度) 등은 다 ‘마디’로부터 파생되거나 의미가 확대된 말이다. 절용(節用)은 씀씀이를 맺고 끊어 분명하면서도 알맞게 한다는 뜻으로서 낭비하지 않고 절약함은 물론 균배(均配)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 부자는 낭비해도 괜찮고 가난한 사람만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것은 결코 절용이 아니다.

節:마디 절, 用:쓸 용, 愛:사랑 애, 人:사람 인. 씀씀이를 알맞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자. 34X87㎝

節:마디 절, 用:쓸 용, 愛:사랑 애, 人:사람 인. 씀씀이를 알맞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자. 34X87㎝

애인(愛人)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공자가 절용과 애인을 연계하여 “씀씀이를 알맞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자”라고 말한 이유는 절용을 강조하다보면 돈이나 물건에 눈이 가려 자칫 사람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 생산원가를 낮추는 것을 절용으로 여겨 사람을 혹사하다가 다치거나 죽게 한다면 결국 애인도 못하고 절용도 못한 꼴이 되고 만다. 개발이익을 얻기 위해 환경을 오염시켜 많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면 이 역시 절용도 못하고 애인도 못한 처사다.

무심결에 “소비가 미덕이다”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량생산이라는 ‘호랑이 등’에 탄 이후에 생겨난 아이러니다. 절용과 애인을 동시에 추구하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고 또 유효해야 한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