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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곳곳서 나이아가라처럼 폭우…지금은 불량률 완전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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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경북 포항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고로가 출하되고 있다. 사진 포스코그룹

지난 23일 경북 포항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고로가 출하되고 있다. 사진 포스코그룹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의 제철소 아조우스탈은 러시아 침공이 한창이던 지난해 최후 격전지로 불렸다. 우크라이나 병사 1000여 명은 제철소를 끝까지 지키려다 결국 생포됐다. 영국이 위성사진으로 분석한 결과 최근 제철소 인근에서 무덤 1500기가 새로 발견됐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수해 극복 현장 가보니

1973년 경북 포항에서 첫 쇳물을 쏟아낸 포항제철소도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인해 전쟁과 같은 침수 피해를 겪었다. 포항제철소 제1고로는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으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건설한 한국 철강 역사의 뿌리다. ‘산업의 쌀’인 철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세계적인 철강 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포스코는 지난 23일 공장 내부를 국내외 취재진에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포항제철소가 완전 정상화한 지난 1월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기자회견장서 울먹거리며 잠시 발표 중단   

임직원과 소방대원, 해병대까지 연인원 140만 명이 밤낮없이 복구에 매달린 끝에 135일 만에 완전 정상화를 일궈낸 과정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본사 1층에 전시했고, 침수 복구 주역들이 행사장에 등장해 소감을 발표했다. 이들이 눈물을 참지 못해 행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현철 포항제철소 열연부 2열연공장 파트장은 “첫 제품이 무사히 잘 나와서 눈물이 났다”며 “직원들과 만세를 몇 번 부르고, 밖으로 나와서도 혼자 울먹였다”고 전했다. ‘제철소의 심장’으로 불리는 고로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현장에서 최명석 제2고로 공장장은 취재진에 “애국가 방송에서 나오는 바로 그 고로”라고 소개했다.

지난 23일 경북 포항 포스코본사에서 수해 복구 주역들이 기자회견에 응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석준 공장장 선재부 3선재 공장, 이영춘 후판부 1후판공장 파트장, 이현철 열연부 2열연공장 파트장, 최주한 제강부 2제강공장 공장장. 사진 포스코그룹

지난 23일 경북 포항 포스코본사에서 수해 복구 주역들이 기자회견에 응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석준 공장장 선재부 3선재 공장, 이영춘 후판부 1후판공장 파트장, 이현철 열연부 2열연공장 파트장, 최주한 제강부 2제강공장 공장장. 사진 포스코그룹

지난해 9월 여의도 세 배 넓이에 달하는 포항제철소 전체가 침수되는데 3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빗물은 공장 1.5m 높이까지 차올랐다. 창사 54년 만에 처음으로 쇳물 생산을 멈췄다. 최주한 2제강공장 공장장은 “그날 아침은 재난영화 시작처럼 고요했다”며 “갑자기 공장 곳곳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를 보고 있자니 나라가 망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당시 참담함을 표현했다. 천시열 공정품질 담당 부소장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였다면 그대로 회사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쇳물 찌꺼기를 담던 용기는 침수 당시 공장 전체에 가득찬 흙탕물을 퍼내는 데 사용돼야 했다. 최주한 공장장은 “한 직원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는 더 못 버티겠다’고 했다”며 “모두가 절망적인 순간이었고 두려움밖에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소방청으로부터 지원받은 방사포까지 동원해 고인 물을 빼냈고, 일부 직원은 직접 집에서 전기차를 가져와 정전된 현장에서 드릴을 돌렸다. 1년은 기다려야 제작이 가능한 핵심 전력 부품은 세계철강협회 등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해 이른 시간에 들여올 수 있었다.

집에서 전기차 가져와 드릴 돌려 

포항제철소가 연간 생산하는 약 1480만t의 제품 중 33% 수준인 500만t을 생산하는 핵심인 2열연공장도 모두 물에 잠겼다. 하지만 이날 취재진이 방문한 2열연공장에서는 침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섭씨 1500도로 가열돼 시뻘겋게 달궈진 슬라브는 빠른 속도로 기계 사이를 오갔고, 물을 뿌려 냉각하는 과정에서 ‘치이익’ 소리가 시원하게 났다.

지난해 9월 당시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사진 포스코그룹

지난해 9월 당시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사진 포스코그룹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지하에 내려가자 공장 열기가 더욱 느껴졌다. 서민교 공장장은 “지하 통로 길이가 420m인데 여기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며 “물을 제거하는 데만 4주일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폭이 8m인 지하 이동 통로 곳곳 바닥에 진흙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벽면은 페인트칠도 새로 해 새 건물 같았다.

현재 포항제철소는 침수 이전 수준으로 불량률이 회복됐고 설비 장애율도 재가동 뒤 6주차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천시열 공정품질 담당 부소장은 “기존에 계획한 생산량을 초과해서 달성하고 품질도 사고 전 수준으로 완전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후대에도 알리기 위해 침수 높이에 표기 

직원들 간 유대감이 더욱 강화되는 효과도 나왔다. 정석준 선재부 3선재 공장장은 “그동안 세대 간 의견 차이도 있었다”며 “힘든 일을 함께 겪어서 전우애가 생겨서 그런지 정상 가동 이후에는 소통이 잘된다”고 말했다.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도 나섰다. 포스코는 냉천 범람 발생 시 유입수를 대량 차단하는 차수벽을 공장 외곽에 설치하고 있다. 피해 상황을 후대에도 알리기 위해 침수 높이였던 1.5m에 맞춰 공장 로비 벽에 간판을 달았다.

지난 23일 경북 포항 포스코본사 1층 로비에 침수 복구 현장 상황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김민상 기자

지난 23일 경북 포항 포스코본사 1층 로비에 침수 복구 현장 상황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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