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첩 그림 21점 가치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독일 수도원에서 이번에 국내로 들여온 겸재 정선의 화첩 그림 21점(대부분 29.5×23.5㎝)은 '인왕제색도'등에 비하면 크기가 작다. 그러나 다양한 화풍이 한 화첩에 모아졌다는 점과 극적인 여정을 봤을 때 국보급 문화재로 손색이 없다.

겸재 하면 금강산 등 실제 풍경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풍의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번 화첩 그림들은 진경산수화 외에 그의 다양한 화풍이 함께 담겨 있다. 강가에서 선비와 동자가 앉아 있는 '야수소서(夜授素書)'처럼 상상의 이미지를 표현한 관념산수화뿐만 아니라 중국의 고사를 모티브로 한 고사도 등도 있다.

왜관수도원에 들여온 그림을 직접 본 안휘준(전 서울대 교수)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겸재 하면 보통 진경산수화를 떠올리는데 화첩에는 산수를 배경으로 한 인물화가 포함돼 있다. 겸재의 인물.산수화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화첩은 그림마다 겸재만의 독특한 필치가 드러난다. 중국 고사를 바탕으로 한 인물화를 보면 인물의 얼굴이나 배경 소나무가 한국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겸재 전문가인 간송미술관 최완수 학예실장은 "진경산수화를 많이 그린 뒤 그간의 여러 화풍을 녹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겸재 화첩은 민간 차원의 영구임대 형식의 반환이라는 점에서 문화재 환수의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유권은 외국에 있지만 문화재 감상.연구는 한국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가 반환된 것은 모두 30여 건 4800여 점에 이른다. 대부분 해외 소장자가 기증하거나 개인.단체들이 구입한 것이다. 국가 간 협상에 따른 것도 있다. 현재 외국에 소장돼 있는 한국 문화재는 7만5000여 점으로 추정된다.

안휘준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국가 간 문화재 반환은 외교.경제적 변수가 많아 매우 어려운 문제다"며 "민간 차원의 자연스러운 반환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