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잡화상 둘째딸… 58년 하원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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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학때부터 정치수업… 24세 첫 출마 다섯번 고배/76년 여성 최초의 보수당수… “옳은 일은 끝까지 관철”
유럽 최초의 여성총리,최초의 3연임 보수당 당수 등의 화려한 경력을 쌓아오다 22일 집권 11년만에 사임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1925년 10월13일 런던에서 1백60㎞ 정도 떨어진 인구 3만명의 농장마을 그랜덤에서 잡화상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대처 총리의 부친은 식료품가게 점원으로 출발,시의원에까지 당선될 정도로 집념이 강한 인물이었다.
대처 총리 특유의 강한 결단력,불요불굴의 신념과 저돌적인 추진력 등은 모두 부친의 이같은 특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보다는 세계의 동향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졌던 대처 총리는 학생시절부터 토론을 매우 좋아했다.
명문 옥스퍼드대 소머빌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대처 총리는 보수당 학생연합회 회장직을 맡는 등 일찍부터 정치수업을 쌓아 오다가 24세때 최연소 하원의원 입후보자로 출마해 낙선했다.
이때의 정치집회에서 10년 연상의 현재 남편 데니스 대처씨를 만났다.
대처 총리는 최근 당시의 데니스 대처씨가 「큰 키에 미남」이고 페인트와 벽지공장을 경영,생활이 안정된데다 자신과 같은 감리교 신자여서 좋은 남편감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결혼 직후 법률공부에 몰두한 대처 총리는 54년 12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데 이어 다섯번이나 하원의원에 낙선한 끝인 58년 10월 마침내 런던 핀츨리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76년 2월11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보수당 당수직에 오른 대처 총리는 헤어스타일도 부드럽게 바꾸고 날카롭고 다소 거만한 듯한 목소리도 나직하게 교정하는 등 소위 「이미지쇄신」작업에 골몰하기도 했다.
82년 포클랜드전쟁 승리,84년 탄광노조 파업극복 등 정치적으로는 성공한 대처 총리지만 집안에서는 여러가지 난관에 부닥쳤다.
현재 신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딸 캐럴(37)은 정치가 어머니를 둔 심적 부담을 견디다 못해 79년 호주로 떠나버렸고 아들 마크는 옥스퍼드대학 회계학과에 낙방한 뒤 자동차 경주선수와 모델로 나서기도 했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처 총리가 공식석상에서 단한번 눈물을 보인 때가 82년 자동차경주에 출전했던 아들 마크가 사하라사막에서 실종됐다는 보도를 접한 순간이었다.
정치와 가정에서 모두 최선을 다하려고 힘썼던 대처 총리의 정치신념은 명료하다.
『항상 옳은 일만 하려고 노력하고 옳다고 판단되면 끝까지 밀고 나간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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