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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옆방서 잠자리"…'J팝 제왕' 50년간 소년 성착취 파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국 BBC 방송이 'J팝의 제왕'으로 불린 일본 남성 아이돌 기획사 창립자의 10대 소년 성(性) 착취 폭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BBC 다큐멘터리 '포식자: J팝의 비밀 스캔들(Predator: The Secret Scandal of J-Pop)'은 7일 오후 9시(현지시간) BBC2에서 전파를 탔다. 일본 J팝을 이끈 남성 아이돌 기획사 쟈니스의 설립자 고(故) 쟈니 기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는 '인기차트 1위 가수를 가장 많이 프로듀싱한 인물'로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콘서트를 가장 많이 프로듀싱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2019년 87세로 별세했지만 일본 문화계에서는 지금도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보행자들이 2019년 7월 10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 연예계 거물 쟈니 기타가와의 사망 소식을 보도하는 대형 스크린 앞을 지나가고 있다. 기타가와는 일본 연예계를 지배하며 SMAP, 아라시 등 영향력 있는 일본의 남성 그룹들을 프로듀싱했다. EPA=연합뉴스

보행자들이 2019년 7월 10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 연예계 거물 쟈니 기타가와의 사망 소식을 보도하는 대형 스크린 앞을 지나가고 있다. 기타가와는 일본 연예계를 지배하며 SMAP, 아라시 등 영향력 있는 일본의 남성 그룹들을 프로듀싱했다. EPA=연합뉴스

그러나 기타가와에게는 미성년자 성적 착취 의혹이 늘 따라다녔다고 BBC는 전했다.

BBC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기타가와가 어떻게 오랜 세월 10대 소년들을 성 착취했는지 취재했다. 그는 60년 이상 아이돌 스카우트와 육성에 직접 관여했다고 한다. 기획사 아이돌이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소년들을 지배할 수 있었다고 BBC는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12살에 불과한 피해자도 있었다.

하야시(가명)는 15세 때 이력서를 쟈니스 사무실에 보낸 뒤 1주일 만에 기타가와의 거처로 초청을 받았다. 하야시는 "기타가와가 '목욕 좀 하라'면서 나를 마치 인형인 것처럼 씻기고 성적 가해를 행했다"고 폭로했다.

1999년에는 언론사 슈칸분슌(주간문춘)이 10대 때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아이돌 지원자 10명 이상의 주장을 담은 기사를 내기도 했다. 비슷한 일을 당한 이들의 진술이 대부분 일치해 당시 취재진은 기타가와 자택 내에 있는 소위 '기숙사'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기숙사는 대부분의 성 학대가 일어났던 장소였다.

이들 지원자는 "성행위를 거절하면 무대(연예계)에서 입지가 나빠진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연습생들은 기타가와의 결정이 내려져야 정식 데뷔할 수 있었다. 데뷔까지 몇 년씩 걸리기도 했기 때문에 기타가와의 요구를 거부하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한 연습생 출신 남성은 자신의 집에 기타가와의 잠자리가 마련됐으며 부모님이 옆방에서 주무시는데도 자신은 기타가와에게 성적 착취를 당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하야시(가명, 사진)는 15세 때 이력서를 쟈니스 사무실에 보낸 뒤 1주일 만에 기타가와의 거처로 초청을 받았다. BBC에 자신의 경험을 폭로하고 있는 하야시. 사진 트위터 캡처

하야시(가명, 사진)는 15세 때 이력서를 쟈니스 사무실에 보낸 뒤 1주일 만에 기타가와의 거처로 초청을 받았다. BBC에 자신의 경험을 폭로하고 있는 하야시. 사진 트위터 캡처

문제는 일본 사회에서 피해자 주장을 묵살하고 없던 일로 덮으려 했다는 점이다. 1999년 슈칸분슌의 폭로 보도가 나온 뒤 쟈니스 측은 슈칸분슌과 자매 언론사들이 쟈니스 소속 연예인과 관련된 모든 취재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쟈니스는 또 이듬해 슈칸분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도쿄 고등재판소는 2003년 7월 슈칸분슌 기사 10건 중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주장을 포함한 9건은 사실이라고 판결했다. 기타가와가 이들에게 담배와 술을 줬다는 혐의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판결에도 대중은 침묵했다. 명예훼손 사건도 형사재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기타가와는 사망할 때까지 기소되지 않았고 사장직도 유지했다.

BBC는 "일본은 50년 이상 쟈니 기타가와의 어두운 비밀을 지켜왔다"면서 "일본 언론은 그의 사망 후에도 거의 침묵을 관철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쟈니스는 연예계에서 너무나 압도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기타가와를 비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쟈니스 보도를 담당했던 전직 슈칸분슌 기자 나카무라 류타로(中村竜太郎)는 BBC에 "여전히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밟혀 뭉개진 것에 매우 화가 난다"면서 "20여년간 이런 사실 때문에 계속 절망 상태였다"고 말했다.

일본 법률상의 한계도 있었다. 일본에선 6년 전까지 남성은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2017년 형법 개정 전까지 남성에 대한 강간은 법령상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BBC의 반복된 의견 요청으로 기타가와의 조카이자 현재 쟈니스를 이끄는 후지시마 쥬리 게이코(藤島ジュリー景子) 사장은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올해 새로운 회사 구조와 시스템을 발표하고 시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설립자의 성 학대 혐의에 대해서는 직접 대응을 피했다.

성 학대 피해 남성들을 전문적으로 돕는 야마구치 노부키(山口修喜) 심리치료사는 BBC에 "학대당한 생존자들은 그루밍(길들이기) 당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트라우마에서 회복하기 위한 첫 단계는 우선 학대가 있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BBC는 "기타가와의 피해자와 일본 사회는 아직 (진심으로 인정하는) 그 한 발을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일본 내에서는 BBC월드뉴스를 통해 이달 하순에 방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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